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콜릿책방지기 Dec 23. 2023

<창백한 말>

테러리스트의 내면 일기

   현대 문학의 문제적 인물의 특징은 내적 갈등이다. 내적 갈등이 없다면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지도 전형적인 문제적 인물이다. 조지가 가진 내적 갈등은 사회적 문제와 개인적 가치가 충돌하는 불일치에서 나오는데,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완전히 투신할 수 없기 때문에 갈등은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 


   러시아 혁명 이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폭정을 막기 위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을 것이다. 해결을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였을 텐데, 조지가 속한 조직이 선택한 방법은 테러였고 그 방법을 위해 동지가 구성되고 성공할 때까지 함께 활동하게 된다. 


   대의를 위한 활동은 언제나 무엇이 우선인가라는 가치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테러를 위해 모인 동지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사회를 꿈꾸며 만났을 테지만 당장 자신들은 테러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기 때문이다. 조지와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은 모두 각자 그 명분을 찾으며 개인적 가치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 모든 명분이 조지에게는 가닿지 못한다. 


   조지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보이는 총독의 얼굴, 둔한 몸으로 술을 마시는 경찰청장의 지친 얼굴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명을 살인한 그들은 개인의 얼굴로 마주하면 그저 평범한 한 인간처럼 보인다. 그런 조지의 시선은 자신에게로까지 향하고, 대의명분을 위한 테러리스트이지만 자신도 옐레나의 남편을 질투하는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옐레나가 조지의 마음을 받아주었다면 조지는 개인적인 삶을 온전히 선택할 수 있었을까. 두 남자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는 옐레나의 말에 크게 실망한 이유가 명분과 자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인간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조지는 그런 인간이므로 옐레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도 행복한 개인으로 살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조지의 살인이 개인적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은 병든 자아가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보이는 행동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한쪽도 선택할 수 없는 극심한 내적 갈등을 가진 문제적 인물이니, 종국에는 사는 게 지겨울 수밖에 없다. 그가 마지막에 든 총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그의 내면을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