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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an 06. 2024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판타지의 대가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 궁금하다면

   에세이를 읽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사고의 틀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켜 주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고의 방향성을 좀 더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는가 하는 것도 고려사항이다. 대체로 “삐딱한” 시선을 가진 에세이스트를 좋아하는데, 그런 사람들의 글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지적해 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태도를 상상해 봤을 때 “삐딱한” 시선이지, 사실은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은 띠지의 소개대로 “여든을 넘긴 판타지 문학의 거장”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대한 궁금증이 큰 상태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더 “삐딱한” 시선을 접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첫 글부터 문제적이었는데, 하버드 대학에서 시행한 설문조사 항목에 대해서 하나하나 반박하는 글이었고 그 반박들이 모두 납득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응할 때 보통은 제시하는 항목 중 하나를 고르기 바빴는데, 작가의 시선으로 보고 나니 불편한 점이 분명히 있었고 그것이 내게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이 책에서 작가가 문제를 삼고 있는 것들은 대체로 어떤 거대한 사회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의 일상에서 섬세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그저 스쳐갈 수도 있는 문제들인데, 그 문제들의 핵심에는 위계와 차별, 관습적 사고들이 숨어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부딪치는 사소한 태도와 작은 시간들이 쌓여서 한 사람을 구성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의로운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분명히 있다. 관습적인 사고와 행동이 사회 정의를 향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의의 기준이 변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노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삐딱한 시선이 고마운 것이다. 그 나이에는 좀 더 편안한 사고를 지향하고 삶을 그저 찬양할 수도 있을 텐데, 지치지 않고 불편한 사고를 하는 것이 말이다. 작가의 불편한 사고가 결국 원하는 곳은, 약자를 좀 더 품고 아이를 긍정하면서도 성숙을 바라는 곳이다. 그래서 그 불편한 시선들이 더 의미를 갖게 된다. 


    거침없이 동료 작가들을 비판하고 당대의 사회 문제를 꼬집으면서도 약자들을 품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태도는, 강자에는 강하고 약자에는 너그러운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조금은 고약한 노인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판타지의 대가가 아닌 삐딱한 에세이스트로서의 르 귄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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