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가가 보여주는 소설의 즐거움
로스토프는 공명심을 가지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가 황제에게 그토록 매혹된 것도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자기 삶에서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해서 전쟁에 참여했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피예르는 전쟁에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내면이 전쟁 중이다. 보리스에게 전쟁은 성공을 위한 발판일 뿐이다. 귀족들에게도 전쟁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각기 다르다. 어쨌든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면 풍요롭고 안락한 집이 기다리고 있다. 개사냥을 할 수도 있고 오페라를 보러 갈 수도 있다. 사랑에 빠져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도 있다.
알렉산드르 황제와 보나파르트가 친교를 맺으면서 전쟁이 소강상태에 있던 1806년 즈음의 러시아 상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당시 귀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어서인지, 이 소설은 인간과 사회를 완벽히 조화롭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피예르의 내면은 바깥의 모습에 대한 완전한 은유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피예르에게 관심을 더 집중하게 된다. “세상에는 겉보기에 나약해 보여도 자기 슬픔을 달래줄 벗을 찾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피예르가 그런 부류였다. 그는 혼자 마음속으로 슬픔을 되새기고 있었다.”(55) 혼자 고뇌하는 사람인 피예르는 루이 16세가 처형된 것이나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된 것이나 모두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겉모습이 전부일뿐인 옐렌과의 결혼을 선택한 이유는 스스로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대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아무도 그렇지 않다.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라. 한 시간 전에 죽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 인생이란 영원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데, 대체 이런 것으로 괴로워할 가치가 있을까?”(56) 피예르의 질문은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고 나서도 해소되지 않는다. 전쟁에 징집되어 무명으로 죽어가던 수많은 농로들의 입장에서 보면 피예르의 질문은 무의미하고 배부른 자의 것이다. 그런 관점을 톨스토이는 놓치지 않는데, 바로 농로의 관점으로 들어가기보다는 귀족의 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로스토프는 이 모퉁이에 서서, 연회를 벌이는 사람들을 한참 동안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도저히 결말이 나지 않는 괴로운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음속에 무서운 의혹이 일었다. 얼굴이 완전히 달라지고 아집도 사라진 데니소프,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과 오물과 질병으로 가득한 병원의 광경이 떠올랐다. 그 병원에서 맡았던 시체 냄새가 아직도 너무 생생해서 대체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렸을 정도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제 황제가 되어 알렉산드르 황제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손이 희고 자기만족에 빠진 보나파르트가 떠올랐다.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이나 전사자들은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237)
로스토프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안드레이 공작도 보고 있다. 인간의 모습이 모순적이라는 것을 이렇게 철저하게 보여주는 작가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권력자의 모습에서부터 영지 관리자의 모습에까지 광범위하게 보여준다.
“만사가 이렇고 흠잡을 데가 없었으나 다만 한 가지 안드레이 공작을 괴롭힌 것은, 자기의 영혼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듯한 거울 같고 냉정한 스페란스키의 눈빛과 희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누구든 보통은 권력을 쥔 사람의 손을 보게 되는데, 안드레이 공장도 그 흰 손을 보았다. 그의 거울 같은 눈빛과 부드러운 손은 왜 그런지 안드레이 공작을 초조하게 만들었다.”(269)
인물을 나타내는 서사의 방식 또한 다채로운데, 나타샤와 백작부인의 대화를 통해서 보리스와 피예르를 보여주기도 하고 피예르의 관찰을 통해서 나타샤와 안드레이 공작의 감정을 알아챌 수 있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독자가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이제 앞으로 읽어갈 내용에서는 나타샤라는 인물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작가가 깔아 둔 복선 덕분에 기대가 되고, 작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피예르의 근본적 질문들이 어떤 대답을 향해 가게 될지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큰 즐거움이 될 것 같다. 개사냥 장면에서 보게 되는 러시아 풍습의 낯선 모습들은 덤으로 느끼게 되는 문학적 즐거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