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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n 01. 2024

<잠 못 드는 밤>

어느 잠 못 드는 밤을 슬기롭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

   양로원에 앉아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면 가만히 앉아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 자체가 소중한 시간일 것 같다. 그렇게 떠오른 기억들은 당연히 맥락이 없이 파편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일 것이고, 대체로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순간일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의 작가에게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들은 그동안 거쳐 왔던 공간과 그 한때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특이한 점은 그 사람들이 대체로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경계에 있는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이며, 이혼과 실패를 겪은 사람들이다. 거기에 외로움은 기본값이다. 


   “어쩌면 여기서 시작된 걸까, 반복되는 실수와 나태의 희생자를 향한 호기심 섞인 연민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가라앉는 생, 연처럼 부드럽고 천천히 낙하하는, 아니 격렬한 추락과 함께 조각나는 생을 향한 연민은.”(22) 


   연민으로 타인을 바라본다면 모든 인간에 대한 시선이 따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문장들은 모두 따뜻하다. 문장의 톤은 그 작가의 목소리일 텐데, 이 책의 톤은 모두 차분하고 따뜻하다. 때로는 단어 하나로 끝나기도 하고 한 단락이 툭툭 끝나버리는 문장으로 이뤄지기도 하는데, 그런 문장들과 내용은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로 연결되는 것이 없는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이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대로 나열되는데, 단어들과 단문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그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들이 운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연결되는 서사가 없다는 점에서 기존 소설의 방식을 파괴한다. 


   기억은 인과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서 나열할 수밖에 없고 또한 조금은 변색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자서전이 아니라 소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남겨진 이미지들을 집약해서 서술해 낸 글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변질되었을지라도 작가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정수는 한 곳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렇게 소설이 되었다. 


   “또 다른 상실에 관해 말하자면, 아마 내 기억이 나를 조금 배신해서, 과거의 풍경과 저녁의 불안에 깃든 어둠을 탈색했을지도 몰라. 나는 그게 얼마나 구미 당기는 일인지, 네거티브의 힘에 관해 여느 사람만큼 잘 알고 있지. 그래, 우리는 마음에 새겨진 이미지들을 차례대로 거쳐 갈 뿐이고,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 집이란 신전 같은 곳이야.”(182)


   작가가 거주한 장소, 만나거나 관찰했던 사람들, 그 시간들을 떠오르는 대로 산발적으로 쓰면서 전체를 하나로 관통하는 이야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인과성만 존재하지 않을 뿐. 인과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 인간의 삶이 인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 가장 따뜻한 시선,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야 하는 존재이면서 의미 있는 존재로 남아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충만해지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 잠 못 드는 밤, 조금은 덜 괴롭고 조금은 더 살아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은 고통. 거기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위장할 뿐, 형용사의 날개를 달고 도망칠 뿐. 문단의 끝에서 단검에 찔리는 것은 달콤하지.”(186) “다 잊어버리고, 나는 아끼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 서로 돕는 사회, 참 아름다운 구절. 그래서 나는 항상 전화를 붙들고, 편지를 쓰고, 잠에서 깨면 B와 D와 C에게 나를 부친다. 아침이 오기 전까지는 감히 말을 걸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밤새 이야기를 걸어야만 하는 그들에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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