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아이들은 바로 영웅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악인이 있어야 영웅도 존재하는 것이라서 아이들은 서로 영웅역을 하겠다고 다툰다. 옆에서 보면 막대기 하나 들고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아마도 생생한 영웅이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싫증이 나고 시들해질 때까지 그들은 영웅 그 자체로 생동감 있게 존재한다. 영화 속 영웅과 아이들이 감정이입을 통해 발현한 영웅은 분명히 다른 것이지만, 영웅은 이런 재해석을 통해서 영원히 존속하게 된다. 이야기는 다시 쓰일수록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신화는 세계를 변용하는 이야기다. 세계에 대한 변용 혹은 은유의 이야기인 신화를 다시 이야기로 만든 것이 『변신』이다. 그 이야기가 오비디우스의 예언대로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그대로 읽혀서는 안 된다. 후대의 작가와 독자들이 끝없이 변형해서 다시 쓰고 읽어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본래의 형태를 고집하거나 그대로 존속하길 바라면 그 이야기는 오히려 쉽게 맥이 끊길 것이다. 시대에 맞춰서 변할 수 있어야 이야기도 살아남는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마치 아이들이 비슷비슷한 영웅 이야기를 보고 그걸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서 스스로가 영웅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오비디우스의 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 동시에, 변신에 관한, 변신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변신에 관해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 작가는 토미라는 도시를 설정한다. 로마에서는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되어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도시인 토미는 신화적 세계가 여전히 남아있다. 이성적 사고와 불가해한 신화적 세계가 공존하는 도시로 오비디우스가 유배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변신을 위해 이보다 더 적절한 도시가 어디 있을까. 그곳에서 사라진 오비디우스를 추적하며 그의 마지막 작품인 『변신』을 찾아 나선 코타는 철의 도시 토미에 살고 있는 변형된 신화적 인물들을 만나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때 코타는 세계가 얼마나 손쉽게 지어졌는가를 처음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오늘의 산이 내일은 무너져 모래가 되어 날려 간다는 것을 깨달았고, 바다 역시 언젠가는 증발되어 구름으로 변하는 것을. 별들이 순식간에 타버린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본래의 형태를 간직하지 못한다.>”(84)
본래의 형태를 간직한다면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이야기가 모두 해체되고 스러져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서 새로 탄생한 것이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책이다. 작가는 기존의 신화에 현대의 일들을 버무리고 섞어서 묘한 세계를 창조해 낸 것이다. 신화의 세계에 이성과 과학의 세계가 섞여 들어간 곳은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에코가 해석해서 들려주는 오비디우스의 이야기는 <돌에 관한 책>인데, “돌은 존재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 최후의 방법”이며 “화석이 되는 것이 존재의 혼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115)이라는 결론에 이를 정도로 코타가 알게 된 것들은 암울하다. 토미 마을의 기후변화와 탐욕스러운 인류의 종말, 미래의 대홍수 이야기 티스가 목격한 나치의 가스실 등이 보여주는 전망들은 모두 인류의 부정적인 미래다.
그럼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최후의 세계는 디스토피아의 세계일까. 신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가는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결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현실의 허구는 더 이상 기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 코타는 비문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 적인 글자는 자기 자신의 이름이다. 오비디우스는 변형된 이야기로, 다양한 세계와 사물이 되어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고, 그의 발자취를 좇던 코타는 자기 이름을 비문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최후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은 이야기이며, 영원히 반복되고 변형되어서 이어져 내려갈 신화일 뿐이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것이고 우리는 그걸 읽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