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철학의 절묘한 만남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은 떠나고 경험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영웅서사시에서부터 이어진 이런 전통은 우리에게 가장 편안하게 다가오는 소설의 형식이다. 이 책을 처음 보게 되면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느냐의 질문이 떠오르게 마련인데, 여행 소설이라는 기본 골격에 자전적 소설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은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형식적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내용적 측면에서 이 소설이 좋은 소설인가 하는 문제는 독자에 따라서 결론이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이 소설은 극적인 면도 없을 뿐 아니라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없고, 주인공의 개성이 흥미를 끈다고 보기에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흥행에 성공한 이유가 무엇인지, 저자처럼 다시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저자처럼 수사학적으로 말하자면, 이 소설은 문장은 평이하지만 작가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었던 질을 보여주고 있다.
질이라는 것은 “곁눈질로 확인해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할 만큼 포착해서 정의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다. 작가처럼 이분법적 사고 체계 혹은 변증법적 사고 체계 안에서 규명하려는 시도는 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어렴풋하게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작가가 탁월성이라고도 하고, 아레테라고도 하는 그 질이라는 것은 사실 어떤 합일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우리는 그걸 에피파니라고도 한다. 순간의 현현, 신과 나 혹은 물아일체의 경험의 순간이 예술을 통해 표출된 것이라고 보는데, 작가는 그런 모습을 스스로의 정신적 통합을 통해서나 동양과 서양, 감정과 이성, 고전과 낭만 등 이분법적으로 나뉜 가치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은 그런 통합의 과정을 보여주는, 지적 탐구의 과정이라서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미적 체험을 하기는 힘들지만, 만약 주체와 객체의 동인이 되는 그 질에 대한 탐구의 여정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자체로 어떤 크고 작은 깨달음의 에피파니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20세기 문명에 대한 비판은, 보다 가속화되고 있는 물질문명에 대해 멈춰서 고민해 볼 시간을 갖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다른 책들도 우리 시대의 문명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안의 방향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책들에 비하면 분명히 하나의 길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