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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Jul 20. 2024

<보스턴 사람들>

개인적 욕망과 집단적 대의 사이에 선 인간 군상

   대의를 위해 투신하던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특징이 있다. 종교적 열정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의를 위해 달려가는 동안 그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들은 방해물로 생각하거나, 그것을 위한 모든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회와 인간을 변화시키려는 거대한 이상은 사실 얼마나 매혹적인 것인지, 그걸 실현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가치는 부정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독립운동을 하거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학생운동을 할 때, 개인적 욕망은 자주 묵살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여기 여성해방 운동을 위해 투신하고자 하는 인물이 있다. 이 여성 인물인 올리브가 이루고자 하는 사회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은 지금도 매우 유효한 것이라서, 이 책이 19세기에 쓰인 것이라는 사실이 놀랍다는 생각도 든다. 올리브가 꿈꾸던 세계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가치와 노력에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도, 그런 이상적 세계의 출현이 불가능하다는 걸 감지하고 있고 인정하고 있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이상적인 세계는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올리브의 욕망은 과도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버드아이처럼 지나고 난 뒤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닫고, 자신이 살아온 흔적이 변화의 추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올리브는 자신은 물론이고 버리나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어쩌면 버리나에 대한 올리브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감정도 들어있었기 때문에 버리나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감정이 섞이고 혼란스러워서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에 인물들이 갈등을 겪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올리브와 대척점에 베이질 랜섬이 있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올리브처럼 선명하게 대의만을 향하지는 않는다. 그는 남부 시대와 가부장이라는 낡은 가치를 추구하는 동시에 버리나를 소유하고자 하는 개인적 욕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랜섬이 생각하는 것은 무섭도록 일베의 것과 흡사한데, 그동안 남성이 누리던 권력이 빼앗긴 것을 억울해하고 여성과 동등한 관계를 이루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 랜섬이 버리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것이 올리브에게는 가장 뼈아픈 것일 텐데, 랜섬이 버리나의 마음속에 가려져 있던 개인적 욕망을 자극했다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랜섬은 낡은 가치를 추구하긴 해도 개인적 욕망과 삶의 중요성에 대해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고, 버리나가 자신이 갖고 있던 진정한 욕망에 대해 스스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올리브는 버리나와의 우정이라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보다 여성 우위의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서, 버리나가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랜섬은 일베라는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이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버리나의 욕망을 알아차리는 인간적 면을 볼 수 있어서, 작가는 입체적인 인물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장차 버리나가 살게 될 가부장적 세계에 대한 암울한 전망도 함께 고려해봐야 하지만 말이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적이나 다름없어서 올리브는 랜섬을 증오하지만, 버드아이는 이조차도 품으려 한다는 것 또한 페미니스트들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닥터 프렌즈도 다양한 여성 인물 중 하나의 모델이기도 하다. 랜섬도 느끼다시피 남성적 특징을 갖고 있는 닥터 프렌즈는, 그러므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인물이다. 


   그리고 문제적 인물인 버리나가 있다. 버리나는 마치 우리 시대의 아이돌처럼 보인다. 누구나 그녀를 이용하고 싶어 하지만 그녀라는 인간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욕망하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의 개인적 욕망을 간파한 랜섬조차 자신의 욕망에 대한 도구로서 버리나를 이용할 뿐이다. 버리나의 부모조차 딸을 이용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뿐, 그녀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버리나에게 올리브는 구원자 같은 존재였겠지만, 그녀가 가고 싶은 길은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다. 매우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과 외모적 특성으로 봐서 여성성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결국 랜섬의 거침없는 공세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이 의미심장한 면이다. 


   1886년에 나왔다는 이 소설은 주요 인물의 면면만 보더라도 19세기적 문학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소설의 사상적 배경이 여성해방 운동이라는 것과 퀴어의 암시라는 소재는 작가가 시대를 얼마나 뛰어넘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서술의 방식 덕분에 긴 분량을 읽는 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인물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갈등을 적절한 대사와 묘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는데, 올리브의 불안과 랜섬의 무례함과 버리나의 순진함이 조화를 이루면서 독자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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