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마르케스의 대표작은 아닙니다만.
작품을 읽을 때 편견 없이 보려고 노력하는데, 그 첫 번째 노력이 작가를 의식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작가의 성별과 나이, 출신을 되도록 배제하고 보다 보면 문장 자체로 말하려고 하는 문학의 힘이 좀 더 잘 보이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명성이 이미 드높아서 문장으로 판단하기도 전에 유명세로 압도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때로는 읽다가 중간에 작가가 너무 궁금해서 찾아볼 때도 있다. 그런 경우는 작가를 알면 작품을 이해하기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다.
마르케스는 이미 유명세로 압도당한 경우면서, 이전에 몇 작품을 읽었던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작용하는 작가였다. 그런데 그의 유고작인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명성이 있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작품의 균질성을 보장할 수 있는가,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 유고작을 내는 것이 과연 작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에 대한 문제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런 면들을 짚어보다 보니, 작가를 배제하고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편견 없이 읽는 행위가 아니라 핵심을 빼고 정수에 접근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작품에만 오롯이 집중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8월에 만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소설은 아나 막달레나 바흐라는 중년의 여자가 주인공이다. 아나는 8월이 되면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섬으로 여행을 가는데, 그곳에서 잠깐의 일탈을 하고 돌아온다. 아나의 일탈은 여성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자기 발견의 서사이기도 하다. 자기 발견을 위한 과정에서 자기 근원에 대한 탐구도 빠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무덤에 찾아가는 것, 그 무덤에서 발견한 어머니의 비밀이 자신에게로 연결되는 것이 모두 자기 근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여성의 욕망은 딸에게도 이어지는데, 수녀원에 들어간다는 미카엘라가 그곳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여성적 욕망에 충실한 것을 보면 3대에 걸쳐서 이어지는 그 욕망의 강렬함이 전해진다.
그리고 아나가 자신의 욕망 및 자기 발견을 이루는 시기는 뜨거운 한 여름인 8월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작가가 기억을 잃어가면서 썼다고 하지만, 인간의 집단 무의식이 이 작품에서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가 『족장의 가을』을 가을이라는 계절을 배경으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이 여름이어야 하는 이유는 노스롭 프라이가 『비평의 해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계절의 상징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자기의 정수를 쏟아부을 수 없을 때 쓴 것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소설의 틀은 무의식 속에서 잘 간직하고 있다가 쓴 것임은 틀림없지만, 우리가 이 작가에게 기대했던 것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다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아나 막달레나 바흐가 문학과 음악 쪽으로 좋은 취향을 갖고 있다는 설정만으로는 주인공의 욕망이 드러나는 대목의 개연성이 충분치 않은데,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남편인 도메니크 아마리스의 바람기를 뒤에서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어머니의 무덤을 이장하면서 유골을 아나 막달레나 바흐가 직접 들고 돌아가는 장면에서는 작가의 힘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런 행동이 주인공이 가진 욕망의 힘을 확고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덥고 힘들게 나야 할 8월을 생기 가득한 욕망의 이미지로 채워준 점에서는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