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나무를 볼 때처럼 삶에 대한 애정이 솟아나게 하는 책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52)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들어도 신기하고 미지의 세계를 살짝 들여다보는 것 같다. 특히나 그 직업이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기술이나 특이한 열정이 필요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실험실을 열망하던 소녀가 엄청난 노력 끝에 자기 실험실을 갖게 되는 이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일단 매력적이다. 실험실에서 일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직업의 세계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좀 더 재밌었던 이유는 과학 덕후의 성공담이어서 그런 것 같다. 호기심으로 연구하는 과학에 매혹당해서 깊이 파고 들어가 결국은 자기만의 어떤 길을 만들어내는 것은 덕후의 차원을 한 단계 혹은 두 단계 이상 끌어올린 것이고, 그런 면에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차원의 성공한 이야기다. 순전히 좋아서 했던 일이고, 그 일에 헌신했던 열정이 식은 적이 없어서 성공에 이르렀다는 것은 언제나 재밌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 작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 부와 명예라는 목표가 아니라 순전히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작가도 그렇고 최대 조력자인 빌도 그렇고, 열악한 실험실의 환경을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가 새로운 사실을 더 발견하고 싶다는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박수를 치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하에 있는 열악한 환경의 실험실에서 밥을 먹듯 밤을 새우고, 정작 밥은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고, 아무 데서나 자고, 머리는 떡 지고 몸은 끈적이는 그 상황을 나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작가는 마치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식물과 나무들처럼 오랫동안 끈질기게 참고 견디는데, 그런 태도가 식물과 나무에 대한 애정과 관심마저 환기하고 있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수많은 식물과 나무들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해 주면서, 그들이 묵묵히 삶을 견디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처음에는 식물의 생장처럼 더디고 지루하게 전개되던 책이 읽어나갈수록 삶에 대한 애정을 일깨워주고 있다.
작가는 빌이라는 엄청난 조력자를 두기도 했고, 괜찮은 남편을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했는데, 그런 작가의 운명은 식물의 생장처럼 우연으로 이루어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물과 햇빛을 찾아서 잘 살아온 결과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성공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자신의 성공과 성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과정에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 더 감동적이다. 어쩌면 그렇게 식물적인 문장이 이 책을 더 조화롭게 만들면서 좀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모양이다. 마치 작가가 좋아한다는 작가처럼 말이다.
“내게 있어서 주네는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큰 힘을 들이지 않으며,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않고, 인정을 받더라도 영향받지 않는 유기적 작가의 전형이었다.”(89)
이 책은 또한 여성 과학자가 살아남은 이야기라서 페미니즘 쪽에도 소속될 수 있는 책이다. 작가는 앞서 나가서 싸우지는 않지만(실험하느라 그럴 틈이 없다), 온건한 태도로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에 대항한다. 길이 막히면 돌아서 가더라도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개척해서 간다. 이 작가가 보여주는 유연성과 끈기는 오래도록 싸워야 할 때 오히려 가장 큰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아주 괜찮은 페미니즘 책이라고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