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가 모든 것을 보는 대로 읽는 경험
인간의 기억이란 것은 자기중심적 원심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은 일어난 사실을 머릿속에서 편집하고 재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체로 자기애적 자장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것은 자기 존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하고, 최대한의 활동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인간의 기억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은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명확한 한계 안에서 씁쓸한 애처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솔 애들러라는 주인공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기억이란 것이 어떤 때는 매우 치밀하기도 해서, 마치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의 흐름에 맡기고 솔의 서술을 따라가면 기억도 제법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이상한 것이 금방 눈에 띄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마치 잠깐 착각한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소설은 솔 애들러라는 주인공이 애비 로드를 건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솔은 그 길을 건너다가 차에 부딪쳐 피를 흘리고 차는 사이드미러가 떨어져 나간다. 사고가 났으니 독자는 솔의 안위를 걱정하게 마련인데, 사고의 당사자들은 정작 아무렇지도 않다. 운전자는 솔의 나이를 묻고 의아해하고, 솔은 운전자에게 잘 가라고 한다.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이어지는 문장에는 눈을 뗄 수가 없다. 제니퍼가 흥미롭게 등장하고 솔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분명한 사건도 있고, 매력적인 인물들도 더러 등장하고, 솔의 가족사도 나오지만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라야 했다. 제니퍼가 한 말이 자꾸 귀에 울렸다.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래?”(33)
솔은 제니퍼가 한 말이라고 했지만, 마치 독자가 화자에게 해야 할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이야기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말해달라고, 소설의 화자에게 요청하고 싶다. 그런데 독자가 요청한다고 해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은 제대로 말해 줄 수가 없다. 솔이 기억을 기술하고 있는 시점이 스물여덟이든 쉰여섯이든 기억이란 것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이면서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솔의 기억은 다른 사람의 기억과 상충하거나 어긋나기도 하기 때문에 솔이 무엇을 말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솔에게만 속한 것이다.
“이런 거야. 솔 애들러. 주제가 항상 너인 건 아니야.” “이런 거야. 제니퍼 모로. 네가 날 주제로 만들었잖아.”(46) 그러니까 이 묘한 대화에서 보다시피 주제가 항상 솔이 될 수는 없지만 솔의 기억 속에서는 항상 자신이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억이란 것은 하나의 사건이 하나의 길로 흐르지 않는다. 기억은 동시다발적이기도 하고 스며들기도 한다. 솔이 발터와 대화를 하던 중 발터가 루나 이전에 있던 동생이 일찍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은 자기 안쪽 깊은 곳에 있던 아픔을 느낀다. 그리고는 이내 미국 케이프코드에 있는 집이 떠오르고, 어느새 제니퍼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 있다. 케이프코드 바닷가와 동베를린 슈프레 강둑에서 동시에 갈매기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서 말이다. 이 장면은 기억이 중첩되고 스며드는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소설을 읽다 보면 솔이 사랑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은 매우 이기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기억은 자기 보호적인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방어적이라서 솔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이기심을 가감 없이 보게 되어서 그렇게 느껴진다. 자기 아이인 아이작이 아픈데도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나, 자신을 책임지고 돌봐주는 맷에 대한 부정적 태도 같은 것, 노동자 계급인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솔에 대한 혐오감이 생겨나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것만이 솔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솔을 보면서 이중적인 마음이 생겨나는 것, 연민과 동시에 혐오감이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기억과 존재 자체에 대한 마음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억의 한계 안에 갇힌 존재들이면서 그것과 싸우는 존재들이다. 서로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에 상처받기도 하고 서로를 기억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우리는 솔을 통해서 보고 있다. 그래서 솔을 보면 연민과 혐오가 동시에 생겨난다. 우리 자신을 보는 것, 우리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런 면에서 아주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걸 소설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설이 나왔으니 우리는 또 한 명의 작가에게 감사할 기회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