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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ug 17. 2024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자기계발서와 소설의 한 끗 차이

   자기계발이란 무엇인가. 보통 문학을 읽는 독자들은 자기계발서에 대해 약간의 경멸을 숨기지 않는데, 과연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제시하는 수칙들을 통해서 자기를 계발한다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에 의구심을 품기 때문이다. 나와 타인이 전적으로 다른 존재이며 타인의 경험을 나에게 그대로 적용한다고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독의 경험으로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더해서 좀 더 큰 경멸감을 품게 되는 자기계발서는 적당히 좋은 말과 격언들을 조합해 놓은 책인데, 이것은 트렌드와 함께 거품처럼 빠르고 쉽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서 아마도 논의의 대상으로 올리기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은 마치 자기계발서처럼 엄밀하게 12장으로 이야기를 분할해 놓고, 대놓고 자기계발서라고 명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먼저 전제하는 것이, “… 자기계발서라는 말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서 도움을 받아보겠다는 이야기인데, 그 누군가는 바로 그 책을 쓴 사람이다. 이것은 자기계발이라는 분야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다.”((12)라고 말하고 있다. 이 문장은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느냐는 질문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 말은 ‘자기계발’이라는 표현에서 ‘자기’라는 개념이 다분히 모호하다는 뜻이다. 모호한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모호한 것이 즐거울 수도 있다. 지나치게 건조해서 마찰이 우려될 경우, 약간 모호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기도 한다.”(12)


   그러니까 상상을 통한 자기계발, 다른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통한 자기계발이라는 의도를 전면에 깔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셈인데, 문학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계발’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리감을 이렇게 좁히는 것에 일부 독자들은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동일한 단어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하는 ‘낯설게 하기’ 기법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서사의 골자는 단순하다. 당신으로 명명되는 주인공이 어려운 환경에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했다가 모든 것을 놓고 죽는다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그 주인공이 예쁜 여자와의 진정한 사랑을 돌고 돌아 발견했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회자정리와 생자필멸이라는 단어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런 이야기지만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다는 것이 야릇한 점이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특정한 고유명사의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당신’이라는 말로 부르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대상에게는 ‘예쁜 여자’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두 사람에게는 누구나 감정이입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둘 중 일부가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일대기를 통해서 “떠오르는 아시아”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떤 선택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다가 죽음에 이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데, 둘 다 이름이 없기 때문에 독자는 그들이 이뤄낸 성공의 일부에라도 자신을 대입해 보거나 배울 수 있다. 


   인물의 모습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자기계발”을 이루는 것,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상상력을 통해 "자기계발"을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소설이 해낼 수 있는 자기계발의 영역이다. 작가는 소설의 공식과 자기계발서의 공식을 잘 조합해서 문학 독자가 당혹감이나 경멸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기계발서를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 단계 진화한 자기계발서를 쓴 영리한 작가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당신이 이 이야기를, 내가 이 이야기를 창조하는 동안, 당신에게 그동안 어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당신의 손을 잡아줄 사람, 당신과 함께 비를 피해 달려가던 사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는 잠시 여기서 당신과 함께 머물고 싶다.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당신의 허락 아래 공간을 초월해, 당신의 창조물 속에 머물고 싶다. 그것은 나를 애타게 하는 미지의 세계다.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해서 상상조차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상상은 참으로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이입이라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능력이다.”(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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