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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Nov 27. 2024

<부활 1>

대작가의 페르소나를 통해 보는 인간에 대한 사랑

  톨스토이의 전작들을 읽고 나서 『부활』을 읽게 되니, 작가가 평생에 걸쳐서 고민해 왔으며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에 비로소 집중해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으로 내세운 네흘류도프는 『전쟁과 평화』의 피예르,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과 이름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으며, 작가의 분신이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하게 모두 말하고 있는 인물이다. 명문가의 여자인 미시와 결혼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망설이고 있는 네흘류도프는 피예르나 레빈처럼 주변 귀족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자기가 속한 집단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동질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사실 행복한 사람이다. 네흘류도프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이 속한 귀족 집단의 생활 방식에 무의식적으로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갖고 있지 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어울려서 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법이다. 그래서 네흘류도프도 싸우기를 포기하고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지만 타고난 의식을 버리지 못해서 불편함을 느낀다. 


   “네흘류도프도 처음에는 싸웠지만, 싸우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그가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나쁜 것으로 여겼고, 거꾸로 그가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나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은 좋은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네흘류도프는 자신이 진 싸움으로 끝을 내고 자신이 아니라 남을 믿기 시작했다.”(82)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서 살아가던 네흘류도프가 각성하게 된 계기는 법정에서 마슬로바를 다시 만난 사건으로 인한 것이다. 배심원이 되어서 아무 생각 없이 법정으로 갔던 네흘류도프가 자신의 순수했던 사랑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부끄러운 과거인 마슬로바를 마주했을 때, 현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후에 목격하게 되는 것들은 모순과 위선과 이기심으로 가득하다. 법정 판결의 문제점에서부터 시작해서 교도소 안에서 벌어지는 부조리와 악행, 귀족들 모임에서 보게 되는 온갖 위선과 타락 등을 마주하게 된다.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는 마슬로바의 눈 때문이다. 


   “갈라지던 얼음, 안개,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트기 전 떠올라 시커멓고 무서운 뭔가를 비추던, 아직 차지 않은 달이 생각났다. 그를 쳐다보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하는 검은 두 눈은 그 시커멓고 무서운 뭔가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111)


   다른 작품에서도 톨스토이가 중요하게 여겼던, “놀라울 정도로 생기가 넘치는 두 눈”은 네흘류도프의 양심을 깨우는 계기가 된다. 그 눈을 의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네흘류도프는 다시 싸우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싸움은 기본값이며 이제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의 문제가 남게 된다. 동물적 인간에서 벗어나 정신적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이상을 위해 투신한다는 의미인데 그 이상은 바로 네흘류도프가 공부했던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에 가닿는다. 토지는 일하지 않는 사람이 소유할 수 없으며 토지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상적 뿌리를 가지고 움직이게 된다. 네흘류도프가 이상을 실현하려고 자기 영지로 가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은 다분히 톨스토이가 독자를 가르치려는 모습이 엿보이긴 하지만, 동시에 어떻게든 자기 사상을 소설에 녹여내려는 노력도 보인다. 


   어찌할 수 없이 시대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첫 문장에서부터 보여주는 대작가의 문학적인 성취는 놀랍다. 우리는 첫 문장에서부터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 예감할 수 있는데, 당연하게도 그걸 노골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네흘류도프가 타고난 계급의 우월감과 관습을 어떤 식으로 벗어나게 되는지 교도소를 방문하는 장면에서부터 보게 되듯이, 톨스토이는 인간은 모두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마슬로바 스스로 갖고 있는 존엄성은 아마도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주제 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두 인물이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톨스토이가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이 소설을 통해서 발견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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