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콜릿책방지기 Dec 02. 2024

<기억으로 가는 길>

작가의 기억이 독자에게 닿을 때 보이는 길

   어떤 소설을 읽으면 소설이 인간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서사가 중요하던 시대에는 이야기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 가장 큰 효용이었을 것이고, 문학적 실험이 중요하던 시대에는 미적인 영감을 주는 것이 큰 역할이었을 것이다. 인간 내면의 문제가 중요해지고 난 시대에는 인간의 내면을 어떤 식으로 잘 그려내고 있느냐가 중요해졌는데, 의식의 흐름 기법을 비롯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의미까지 보여주고 있다.


   작가 자신의 과거나 트라우마와 같은 것들을 소설 속에 녹여내면서 인간 존재의 깊은 내면을 탐구하곤 하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작가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과연 어떤 효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곤 한다. 사람은 동일한 경험을 하지 않을뿐더러 똑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기억하는 것도 각자 다르다. 그 차이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모디아노의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개인사를 알지 못한다면 이 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작가와 작품은 별개의 존재이고, 작품은 그 자체로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와서 대체로 작가의 삶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모디아노의 작품을 읽을 때 압도적인 모호함이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작용했던 것 같다. 소설 자체가 가진 모호함도 그렇지만 작가에 대해 모르고 읽어서 발생한 해석의 모호함도 있었던 것이다. 이 작가의 소설은 작가의 삶에 대해 알고 난 이후에 해석의 지평이 확실히 새롭게 열린다. 이 책의 주인공인 장 보스망스가 찾고 있는 의미가 작가를 알고 난 이후에 비로소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도구처럼 보인다. 작품 안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구도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다시 살 수 없기에, 유령들을 완전히 무해하게 만들고 그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책은 그들을 소설 속 인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일 터였다.”(37)


   어린 시절에 경험한 어떤 사건이 주인공을 여전히 겁나게 하는데, 그 이유는 사건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막연히 기억하고 있던 사건은 과거의 그 시점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자신 혹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떤 작용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보스망스 혹은 작가는 계속 과거를 추적한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온 것처럼 어린 시절에서 왔어.’ 하지만 어떤 어린 시절인지, 어떤 나라인지를 한 번 더 정확하게 해두어야 했다. 그 점이 그에게는 어려웠을 것이다.”(103)


   그렇게 한 개인, 작가라는 한 사람의 과거를 추적하고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이 독자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작가가 과거의 어떤 경험이나 트라우마를 그대로 묻어두지 않고 파헤치고 꺼내어 그것의 의미를 다시 조망해 보는 것을 따라가면서, 독자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비슷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 


   “그가 글을 쓰는 동안, 그리고 책의 페이지가 이어지는 동안, 그의 삶의 한 시기가 녹아내렸거나, 압지처럼 페이지들 사이로 흡수되었다.”(183) 


   작가는 그 의미들을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승화시켜 내고, 독자는 그 승화의 과정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승화를 경험한다. 굳이 소설의 효용을 따지자면 그런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효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역시나 독자의 몫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