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역사를 잘 버무려 만든 소설
밤에 돌다리 밑으로 가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독자가 제멋대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이 제목에 빨려 들어가서 읽기 시작하다 보면 소설의 제목이 소설 속 한 장의 소제목으로 들어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 대목만 따로 먼저 읽어도 무방한데, 장편소설이지만 앞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읽지 않아도 괜찮도록 구성된 소설이라서 그렇다.
열네 개의 단편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소설은 각 이야기가 독립적이면서도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초반부를 읽을 때는 이야기들이 도대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종잡을 수 없어서 의아한데, 중반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보면 이 소설은 퍼즐 맞추기를 하는 느낌이다. 어디서부터 맞춰가든 결과는 똑같고, 초반에는 결과물을 예측하기 힘들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대략적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미스터리가 아니면서도 미스터리 장르를 읽는 듯한 즐거움도 있다.
밤에 돌다리 밑에서 벌어지는 일도 상상과 조금 어긋난다. 랍비 뢰브가 발견한 장미와 로즈메리. 둘이 얽혀 있는 모습은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이기만 한다. 둘의 사랑은 조화롭지는 않아도 어쩐지 향기로울 것 같다. 하지만 저주를 풀기 위해 뢰브가 로즈메리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것이 에스터의 죽음과 연결되면서 풍경은 이제 이야기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가 된다.
독자의 예상과 상상에서 계속 어긋나는 것은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다. 추리물을 읽을 때 작가가 예측하기 힘들었던 범인을 보여주면 그 의외성에 찬사를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도 내내 독자의 예상을 벗어난다. 독자가 기존에 품고 있던 유대인의 이미지와 황제의 모습 또한 예상과 다르다. 인색한 수전노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던 유대인이 마이슬로 인해 보다 풍부한 인간적 모습을 갖게 되고, 무능한 루돌프 황제가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모습을 통해 약간의 연민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기술하는 방식 또한 이 소설에 매력을 더한다. 두 명의 광대, 아이 유령, 다양한 천사들, 마술적 힘을 지닌 랍비 뢰브, 점성학자 케플러, 연금술사 판 델레 등등은 환상과 역사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소설의 세계에서 이야기를 확장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역사의 사건들과 인물들을 다시 조망해보기도 하고, 새롭게 구성해 보면서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수많은 우연에도 불구하고 마이슬이 필연적으로 루돌프 황제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는 소설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현실에서 볼 수 없고 이미 벌어진 과거의 사실이지만, 적어도 상상의 세계에서는 우리만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곳에서는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소설이 주는 최고의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