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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2>

인간 이성의 힘, 파우스트,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by 초콜릿책방지기

2권은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로 인해 얼마나 철저히 파멸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 기대를 갖고 읽게 된다. 파멸로 인한 지옥행인지 혹은 파멸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이를지에 대한 궁금증이 2권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2권의 시작은 비교적 평온하다. 불안한 파우스트가 알프스의 자연에서 휴식을 취하며 회복한다.


그러고 나서 파우스트는 성직자와 기사들로 인해 곤궁에 빠진 황제를 만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곤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재능 있는 자의 천성과 정신의 힘”이라고 말하지만, 황제를 둘러싼 신하들에게서 “천성은 죄악이고 정신은 악마”라는 반박을 받는다. 학자들이 연금술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악마의 힘을 빌어 마치 연금술처럼 황금을 캐내거나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황제를 구해낸다. 지금으로 따지면 마치 비트코인을 채굴하거나 만들어내는 방식처럼 말이다.


기분이 좋아진 황제는 축제를 열고,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던 연극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천문박사를 대리자로 내세워 그리스 시대의 아름다운 인물인 파리스와 헬레네를 소환해 낸다. 헬레네에게 반한 파우스트는 현실과 초현실이 교차하는 “이중세계”를 세우면서까지 그녀를 구하고자 한다. 이중세계라니. 혹시 괴테는 미래에 와서 평행우주론까지 공부했던 것일까.


어쨌든 괴테의 정신 상태로 봐서 종횡무진 어디로든 갈 수 있었던 파우스트는 과거인 고딕 세계에 들어가서 바그너가 만든 호문쿨루스를 만날 뿐 아니라, “고전적 발푸르기스의 밤”에 다양한 고전주의 시대의 인물들을 만난다. 호문쿨루스라니. 괴테는 정말 미래에 와서 프랑켄슈타인도 보고 간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파우스트는 스파르타 시대로 가서 헬레네와 결합하여 아들인 오이포리온을 얻는다. 어리고 경박한 오이포리온은 이카로스처럼 날기를 시도하다가 죽어버리고, 슬픔에 빠진 헬레네는 오이포리온을 따라서 떠난다.


이제 파우스트는 또 다른 열망을 갖게 되는데, 바다를 메꾸어 땅으로 만드는 간척사업에 성공하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반란군들에게 둘러싸인 황제를 위해 싸워서 이기고 난 뒤 간척사업을 해서 땅을 얻어낸다. 이미 존재하는 땅 말고 자신이 만들어낸 땅을 갖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이 다른 인간들과 차별화된 파우스트의 욕망이다. 기존의 것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재미도 덜 하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서 차지하는 것이 훨씬 더 재밌는 일이다. 미래의 인간들이 할 법한 일들을 파우스트는 다 해내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파우스트지만, 결핍은 끝이 없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깨달은 것은,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끝없이 추구해 오던 모든 것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루어낸 그 순간조차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죽는다. 이 대목에서 파우스트가 부러우면 우린 이미 진 것이다. 계약대로 그의 영혼을 가져가려던 메피스토펠레스를 가로막으며 천사들이 말한다.


“영들의 세계에서 고귀한 한 사람이/악으로부터 구원되었도다./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459)


갈망을 멈추지 않는 자, 하나의 욕망을 이루고 나면 또 다른 욕망으로 목마른 자, 그런 자가 바로 인간의 원형이다. 파우스트는 그런 인간의 원형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가진 이성의 힘은 그 힘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던 악마를 이겨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힘이었던 것이다. 신의 뜻에 따라서 살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고,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스스로 미래를 그려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인간이 원하는 대로 세상은 재창조될 것이며 그 선봉에 파우스트가 서 있다. 파우스트처럼 스스로 구하는 자들이 세상을 얻게 될 것이고, 일련의 그 결과물 속에 우리는 서 있다.


이제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서 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1권에서 봤던 삶의 의미를 잃은 골방 서생을 생각해 보면, 자기 안의 도그마에서 벗어나 생동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상태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만연한 우울에 잠긴 상태에서 벗어나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살아갈 힘을 되찾는 것일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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