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어도 재밌는 19세기 소설
이 소설은 데이비드 코퍼필드라는 사람의 자서전 형식으로 시작한다. 데이비드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 “나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이야기에서, 과연 내가 주인공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넘겼는지는 다음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15) 분명히 데이비드의 인생 역정을 그리고 있는 것인데도, 작가는 이 인물이 주인공인지 아닌지에 대해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고 있다. 분명히 전형적인 주동 인물인데도 화자가 주변 인물들에게 먼저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에서 특별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과연 기대했던 대로 우리는 먼저 의붓아버지 머드스톤 씨와 미스 머드스톤을 만나게 된다. 데이비드에게 첫 번째 고난을 안겨주는 사람들인데, 다행히 데이비드를 진심으로 품어주는 패커티라는 유모가 있어서 역경을 이겨낼 힘을 준다. 집에서 쫓겨나 들어가게 된 학교는 악당 같은 크리클 교장이 있고 환경도 매우 열악했지만 데이비드를 보살펴주는 멜 선생님이 있다. 그리고 데이비드가 우상으로 여기게 되는 스티어포스도 이곳에서 만난다. 어린 데이비드에게 어른들은 너무 멀리 있지만 몇 살 먼저 태어난 제법 많은 것을 경험한 것처럼 보이는 영악한 스티어포스가 롤모델이 되기는 쉬운 법이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스티어포스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는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멜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나 토미 틀래들스에게 하는 행동들은 때때로 데이비드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학교에 제법 적응했다고 생각할 무렵 데이비드의 심약한 어머니가 죽어서 고아가 되고, 그런 데이비드를 머드스톤 남매는 점원으로 일하도록 보내버린다. “그러는 동안, 나는 유망했던 내 미래가 완전히 무너지고, 내가 아주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낡은 책이라도 없었다면 매우 비참했을 것이다. 책이 나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그런 만큼 책에 대해서는 매우 충실했고, 책도 결코 나를 배반하지 않았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것들을 계속 되풀이해서 읽었다.”(183)
데이비드는 점원으로 일하면서 미토버 가족을 만나 마음을 의지하며 힘든 상황을 버티다가 그곳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친척인 대고모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는 모험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대고모는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것과 달리, 따뜻한 심성을 가진 여장부여서 데이비드를 받아주고 다시 공부를 시켜준다.
대고모의 집에서 만난 딕이라는 인물도 굉장히 특이한데, 아마도 이 인물의 진가는 2권에서 발견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아그네스나 우라이아 힙도 중요한 갈등 요소로 등장하는데, 이미 복선은 깔려 있지만 본격적인 갈등 상황은 2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데이비드는 착실히 공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한 후 대고모의 조언에 따라서 민법박사회관에 들어가서 소송대리인이 될 준비를 한다. 그곳의 상사인 스펜로 씨의 초대를 받아 가게 된 그의 집에서 딸인 딸린 도라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사실 소설의 시작에서는 데이비드가 금요일 밤 자정에 태어나서 불운을 타고났다고 하긴 했지만, 주변에 반동 인물과 조력자가 동시에 존재해서 순간순간 닥친 어려움들을 헤쳐 나간다. 문제는 데이비드가 각별하게 자기 인식을 많이 하는 인물이라서 언제나 주변을 의식하고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듯 바라보곤 하는데, 성장해 가는 아이의 특징이라고 해도 유난히 섬세한 기질을 갖고 있는 인물인 것 같다. 독자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인물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지금은 나도 세상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아서 어지간한 일에는 거의 놀라지 않지만, 그래도 그 어린 나이에 그처럼 버림받다니 지금 생각해도 놀랄 일이다. 뛰어난 능력과 예리한 관찰력을 갖추었으며, 재빠르고 열성적이며, 신중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게 상처받는 이 아이를 누구도 도우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했다. 나는 열 살에 머드스톤 앤드 그린비 상점의 잡일을 하는 점원으로 고용되었다.”(187)
그래도 그의 주된 조력자인 패커티 가족과 대고모와 딕이 있으며, 사소하게는 멜 선생님도 있고, 이중적인 면은 있지만 미코버 가족이 있어서 데이비드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살게 된다. 어려서 자주 무시당하고 미숙해서 언제나 당하기만 하면서 열등감이 쌓이던 데이비드도 조금씩 성장해서 자기 집에서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사랑에 빠져서 결혼 약속까지 하기도 한다. “내가 여자에게 반하기 쉬운 성격이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언제나 순결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도 그때를 되돌아보고 웃을 수는 있어도 경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448)
유복자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 불행을 겪었지만 다양한 주변 인물을 만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데이비드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비롯해서 주변 인물들의 천태만상의 행태들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겪고 난 후 자서전을 쓰게 되면 과연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것 같다. 데이비드의 경우처럼 자신의 성격과 의지보다는 운명 혹은 주변인들의 지분이 더 큰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