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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홍콩의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아픔

by 초콜릿책방지기

홍콩 영화로 대표되는 홍콩 문화의 황금기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 문화의 특별함에 대한 기억도 있을 것이다. <첩혈쌍웅>과 <영웅본색>을 거쳐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과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등등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시에 홍콩 문화가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 말없이 수긍하게 된다. 그 문화의 특색에 대해서는 특별히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보통 트렌드는 향유할 뿐이지 그것을 가지고 고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잊고 있던 당시의 문화를 소환해서 홍콩 문화의 특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은 탄커이라는 화자가 실연을 당하자마자 열두 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난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동생 커러는 의도치 않게 커이의 상처받은 마음을 채워주는 역할을 맡으며 태어난다. 이후에도 커이는 바쁜 부모님의 빈자리를 커러로 채우며 살아간다. 커러가 커가면서 보호자였던 커이의 위치만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둘은 사스와 우산 혁명과 같은 홍콩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커간다. 자신들에 대해 커이는 이렇게 말한다. “괴로운 세상의 외로운 아이들이었다.”(48)


하지만 커러가 혁명의 소용돌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위험까지도 무릅쓰려고 할 때는 온전히 그걸 지지해 줄 수는 없다. 부모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가족애와 끈끈함을 커러에게만 느끼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가족이라는 존재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대의가 아무리 크더라도 개인적인 안위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커러는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커이를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히 커이는 커러가 하려는 일을 이해하고 있지만 이해하는 것과 가족의 안전은 타협하기 힘든 문제라는 것도 안다.


“때로는 주성치가 어떤 영화에서 특정 대사를 했는지를 두고도 상대가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인생 전부를 바쳐야 할 것 같겠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옳은 일을 계속하기만 하면 되지. 다른 사람의 잘못에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을 거야. 증명하기 위해 네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더더욱 없고. 그래, 그건 시간이 한참 지나 네 청춘이 시들 때겠지. 그게 인생의 여정이고 상식인데 왜 다들 잊어버렸는지 모르겠어. 젊음이란 전력을 다해 자신이 옮음을 증명하는 것인데.”(225)


문제는 자신들의 의견을 대신할 국회의원도 당선이 취소되고, 자신들이 원하는 변화는 요원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홍콩 사람들에게 일종의 집단 우울증이 생겨나는데, 커러 또한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진다. 커이의 친구이며 함께 사업을 하던 아차오조차 홍콩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독일로 떠나버린다.


“아차오는 인내심을 잃어버렸다면서 친구한테든 모르는 사람한테든 한순간에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일을 대하는 태도도 예전보다 각박해졌고 모든 것에 무덤덤하다 못해 무감각해졌어. 원래 좋아하던 일에조차 흥미를 잃었고 모든 사람과 사물이 나쁜 방향으로 발전하고 성장한다고 여겨져. 이 작은 도시가 싫어졌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고…….”(229)


죽고 싶다는 동생을 제대로 된 말로 설득할 수 없었던 커이는 아차오의 꼼수로 자살 시도를 연기하게 만들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커러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일 뿐이니까. 지금 홍콩의 상황처럼 희망적인 전망이 없이 소설을 끝난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특별한 애정을 가진 남매의 이야기인 것 같고 굉장히 사변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데, 읽다 보면 소설의 스타일이 홍콩 영화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서양도 동양도 아니고, 중국도 중국이 아닌 것도 아닌 그런 상태의 홍콩을 나타내던 독특한 그 홍콩 영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아주 특별한 이야기는 없지만 스타일 하나는 내내 기억에 남는 것, 그것이 홍콩 영화의 상징이었던 것 같은데, 이 소설은 그 기억을 소환해낸다. 고금을 넘어 오래도록 읽히면서 인간 정수를 표현하는 소설들도 있지만 당대의 트랜드와 스타일로 한 시대를 말하고 있는 소설도 있는데 이 소설은 후자 쪽이다. 어느 쪽이 더 좋은가는 당신의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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