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강력한 질문을 던져주는 SF 고전 소설
시대를 앞서나갔던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는 그때 그 시절의 참신한 생각이 지금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얼마나 다른지 확인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129년 전에 쓰인 이 소설 또한 그런 재미를 찾을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굉장히 예민한 문제가 될 수 있는 동물생체실험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이 더 흥미롭다.
아마도 세계대전이라는 야만의 시기가 도래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런 소재를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인간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공상과학이라기보다는 고발 문학에 가까운 것이라서 상상의 영역이라고 치부하고 읽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 에드워드 프렌딕은 박물학을 소일로 삼고 있는 독신 남자인데, 난파한 레이디베인호에서 탈출한 후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 위를 떠돌다가 몽고메리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 우여곡절 끝에 몽고메리가 살던 고독의 섬이라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엄청난 일을 목격하게 된다. 생체실험으로 문제가 되어 과학계에서 쫓겨났던 모로 박사가 그곳에서 개인적으로 실험을 이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프렌딕은 다양한 반인반수를 보게 되는데, 그것들은 모두 이종 동물끼리의 교합종을 인간화한 생명체들이다.
“이 세 녀석은 제각기 사람 꼴을 하고서 누더기일망정 옷을 걸쳤고 조악하긴 하지만 몸꼴이 사람임에도 그 몸짓이나 표정이나 전체 모습에 필시 돼지를 연상케 하는 추잡한 역겨움이며 그 짐승의 어쩔 수 없는 특징이 깃들어 있었다.”(65) 프렌딕은 그 생명체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역겨운 느낌을 떨칠 수가 없지만 점차 그들에게서 인간적 속성을 엿보게 된다. “완벽한 동물의 자세를 취하고서 눈빛을 번쩍이며 공포에 뒤틀린 그 불완전한 인간 얼굴을 보면서 나는 녀석이 인간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142)
모로 박사가 동물성을 억압하기 위해 신처럼 군림하면서 ‘법’을 따르게 하지만, 섬에 사는 생명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동물성을 회복하게 된다. 피맛을 보게 되면 야생성이 더욱 빠르게 회복되게 되는데, 그러면서 점차 고독의 섬은 인간들에게 위험한 섬이 되어간다. 그러다가 새로 들여온 암컷 퓨마가 실험 단계에서 탈출하고, 탈출한 퓨마를 쫓던 모로 박사는 그 퓨마에게 죽임을 당한다. 모로 박사의 조수였던 몽고메리도 짐승들과 어울리다 죽어버리고 결국 프렌딕 혼자 섬에 남게 된다. 프렌딕은 살아남기 위해 모로 박사가 쓰던 수법인 신이 되는 방법을 선택하지만 짐승들은 빠르게 ‘완고한 동물 신체’로 돌아가 버려서 별다른 소용이 없다.
프렌딕은 필사적으로 섬을 탈출하고 다행히 구조되어서 런던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모든 사람들이 동물 인간처럼 여겨지는 망상에 시달린다. “내 망상과 싸우려고 길거리로 나설 때면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여자들이 야옹야옹 나를 뒤따르고, 수상쩍고 탐욕스러운 남자들이 나를 질시하듯 힐끗거렸다. 지치고 파리한 노동자들이 부상당해 피 흘리는 사슴처럼 피곤한 눈을 하고 기침하며 빠르게 나를 지나치고, 꾸부정하고 활기 없는 노인네들이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지나갔다. … 그러다가 나는 옆으로 비켜 예배당으로 들어가곤 했다. 거기에서도 불안감이 커졌다. 목사가 원숭이 인간이 그랬던 것처럼 ‘큰 생각’을 깩깩거렸다.”(196)
모로 박사의 동물생체실험이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그의 목적과 욕망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순전히 호기심과 과학적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모로 박사의 의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보면서, 현재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 발전의 목적은 순수한 인간의 욕망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마저 순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모로 박사가 자신만의 피조물을 만들었듯 지금 우리 세상에서는 AI를 비롯해서 이미 상상을 뛰어넘는 피조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창조자 인간의 위대함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맞을 미래가 모로 박사의 섬과 과연 얼마나 다를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지구라는 같은 섬에 살고 있어서 프렌딕처럼 탈출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일론 머스크 정도라면 화성으로 탈출할 수 있으려나.
그래서 프렌딕이 마지막에 남기고 있는 말을 조금 더 곱씹게 된다. 우리는 여전히 불가해한 우주의 일부일 뿐이라는 자각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한없는 평온과 위안을 얻는데 그 까닭을 나도 모르겠다. 우리가 찾아야 할 우리 내부의 동물성 이상의 어떤 것, 그 위안과 희망은 우리들 일상사와 속악과 고민거리에서가 아니라 저 광대 불변한 법칙에서 찾아야 하리라. 나는 그런 희망 없이는 살지 못한다.”(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