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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발걸음>

댄스스포츠를 통해 자신만의 발걸음을 찾아간 이야기

by 초콜릿책방지기

댄스스포츠라는 낯선 영역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을 읽다 보니 문득, 춤이라는 걸 한 번 배운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보다 몸이 더 유연하다고 믿었던 시절에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한 남자에게 메렝게라는 춤을 아주 잠깐 배운 적이 있었다.


룸바도 차차차도 추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나에게 아주 진지하게 도미니카 공화국의 춤을 가르쳐주고 싶어 했으나, 그분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몸이 뻣뻣했기 때문이다. 설명해 주는 그대로 따라 해 봐도 허리는 돌아가지 않고 몸과 생각은 따로 움직였다. 그때 이후로 다시는 절대로 춤의 세계는 엿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이 소설은 그 결심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대리만족의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주인공 샤텐은 직업도 없이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데,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으면 사라지고 마는 거품 같은 존재로 인식한다. 독립하기 전까지 엄마의 학대를 받아서 자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샤텐의 엄마는 의대를 나올 정도의 엘리트였는데 샤텐을 양육하느라 자기 삶의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밥을 해주는 시간도 아까워하고 딸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려고 한다. 독립을 하면서 엄마에게서 벗어나긴 했지만 언제든 사라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춤을 만나고 나서는 집착과 욕망이 생기게 된다.


엄마로 인해서 몸에 대한 인식이 성적인 의미로만 한정되어 있던 샤텐이 춤을 추면서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엄마에게서 통제당하던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는 춤의 세계가 샤텐을 해방해 주었다. 댄스스포츠는 샤텐 개인에게도 그렇지만 다른 의미에서도 해방의 통로이기도 했다. “댄스스포츠가 예전에는 술집 여자들이나 추는 춤이라고들 알고 있었지만 요즘은 젊은 학생들이 열광하는 춤이 된 거잖아. 우리 섬이 반세기 동안 계엄을 거쳐 해방까지 지나온 여정과 거의 일맥상통해. 정치적으로 억압이 심했던 시대의 얘기를 하다 보면 개인의 몸이 속박당했던 시절 얘기도 항상 같이 나오지.”(84)


샤텐이 의지하던 둥니 선생님은 동성애자라서 쓸데없이 성적 긴장감을 느끼거나 생물학적 거리를 침해당하며 불편해할 필요도 없는 데다 진심을 다해 춤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둥니 선생님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동성애자로 살면서도 부모님을 부양할 수 있는 어리고 춤을 잘 추는 여자와의 결혼을 꿈꾼다. 샤텐은 춤을 좋아하지만 댄스스포츠계는 전반적으로 남성 우위의 문화가 지배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어서 샤텐을 억압한다. “바깥 세계의 남녀 논리가 댄스스포츠 세계의 남녀 논리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둘 다 ‘Men Lead’가 통하는 세계였다.”(97)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은 샤텐에게 자신을 옭아매던 몸에 대한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삶에 대한 의지를 다져주는 매개체였다. 그래서 유진과 같은 무례한 파트너의 태도도 참아 넘기고, 파트너가 없을 때는 혼자서도 연습하고, 다른 사람의 파트너를 잠깐 빌려서 춤을 추기도 한다. 춤은 샤텐이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의미였기 때문이다.


“가끔 상상하곤 한다. 만약 인어가 죽고 싶지도, 바닷속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면 태양이 솟아오를 무렵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대신 어디로 갔을까? 아마 나처럼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바다를 떠나 육지로 올라갔을 것이다. 그길로 인간들이 사는 도시로 향했을 것이다. 새로 생긴 두 다리로 걷는 연습을 마치고, 안정적으로 걸음을 뗐을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지 염탐하며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다 육지의 삶이 외로워지면, 춤을 배웠을 것이다.”(116)


그러던 샤텐에게 “망망대해 같은 이 세상에서 휘청대던 내가 잠시나마 발을 붙일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는 데이비드가 나타난다. 데이비드를 만나고서도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일도 시작하고 현실도 점차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발가락 부상도 겹쳐 춤을 쉬는 동안 샤텐은 둥니 선생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샤텐은 한동안 춤을 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다시 한번 시도해 보는데, 둥니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미련 없이 그만둔다. 이제 더 이상 반짝이는 비늘이 달린 치마를 두르고 인어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지 않고, 평범한 여자가 되어서 육지에서 살고 싶어진 것이다. 이제 샤텐에게는 “거침없이 앞으로, 고개를 들고 걸어다니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필요할 뿐이다.


나에게는 그토록 배우기 어려운 한 영역이었던 춤이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삶을 은밀하게 지탱해 주는 비밀일 수도 있고, 삶을 살게 해주는 목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보게 되었다. 샤텐과 둥니 선생님을 보다 보니 내게는 그렇게 절실한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배우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 사람의 삶에 마법처럼 찾아오는 이런 비밀들은 결코 의지의 영역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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