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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박사의 딸>

원작과 비교해서 읽어보세요.

by 초콜릿책방지기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들의 경우, 오래전 나왔던 참신한 아이디어의 고전 영화들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거나 변형시켜서 만든 영화가 참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영화들은 원작 영화와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 발전된 기술이 구현해 내는 보다 정교한 실사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소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쓰기를 하는 경우 대체로 원작에 못 미친다는 평을 받기가 쉽고 심지어 원작의 의미를 훼손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영화와 소설이라는 매체의 차이에 따라 평이 갈리는 결정적인 이유는 인간의 상상력이 메워줄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이 소설에 훨씬 더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소설은 원작의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쓰는 것에 좀 더 용기가 필요한 도전적인 일일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이 소설은 매우 도전적인 작품이다. 『모로 박사의 섬』의 아이디어와 인물을 가져와서 자기 방식대로 변형한 작품인데, SF 작품에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의 역사적 배경과 사랑 이야기를 함께 버무려놓았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비교적 비중이 적었던 몽고메리를 남자 주인공의 자리에 올려놓고, 새롭게 창작한 인물인 모로 박사의 딸, 카를로타를 여자 주인공의 자리에 배치했다. 두 주인공이 번갈아 가면서 화자로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이름만으로도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유카탄 반도의 야삭툰이라는 지역에 숨어서 모로 박사는 동물인간들을 만들어낸다. 원작에서는 순전히 과학적 야심으로 하는 실험이 여기서는 농장에서 일할 인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으로 바뀌어있다. 박사를 돕는 몽고메리는 빚 때문에 이곳에 머물고 있긴 하지만 동물인간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가장 인간적인 존재로 나온다.


“몽고메리는 자신에게 돈을 준다고 해도 아센다도(농장주)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다. 몽고메리에게 인간은 모두 개보다 못한 존재였기에 그는 인류를 매도했다.”(30)


카를로타는 박사의 혼외자라고 알려왔지만, 박사가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만든 동물인간이다. 박사는 카를로타를 비롯한 동물인간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군림해 왔지만 농장주인 리잘데 앞에서는 나약할 뿐이다. 농장에서 일할 동물인간을 만들어내지 못한 박사는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카를로타를 리잘데의 아들인 에두아르도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카를로타가 매력적이라고 해도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라도 결혼은 성사되기가 쉽지 않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멕시코에서도 사람의 지위는 나무처럼 확고하게 구조화되어 있었다. 피부색과 혈통이 나뭇가지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결정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멕시코를 떠났지만 그들의 관습은 남아 있었다. 카스타 계급 체계는 실제로 존재했고 아주 오래된 편견도 남아 있었다.”(263)


결국 리잘데 세력과 충돌이 일어나고, 양쪽 모두 죽거나 다치게 된다. 모로 박사도 쇠약해져서 죽음을 맞게 되고, 야삭툰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모로 박사의 유언 덕분에 카를로타는 유산을 받아서 집을 지키게 되는데, 카를로타를 사랑하는 몽고메리는 그녀를 그대로 지켜주기 위해 그곳을 떠난다.


원작보다 훨씬 긴 분량의 이 소설은 여성 문제와 계급 문제를 비롯해서 동물권과 유카탄 반도의 역사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야심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이국적인 정취에 더해서 재규어의 피가 흐르고 있는 카를로타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매우 아쉽게도 인물들과 이야기의 구도가 너무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참신함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카를로타가 동물인간이라는 것을 반전으로 드러내기 위한 복선이 지나치게 길고 설명적이고, 몽고메리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도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해 버렸다. 카를로타라는 인물 하나에만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 역시 소설은 원작을 뛰어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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