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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코퍼필드 2>

디킨스의 삶에 대해 궁금하다면

by 초콜릿책방지기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자서전 형식으로 시작한 이 책은 1권에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청년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줬는데, 2권에서는 청년기 이후의 사랑과 결혼, 직업적 성취가 주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민법박사회관의 상사인 스펜로 씨의 딸 도라와 서로 마음이 통해서 약혼을 하지만, 스펜로 씨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그 와중에 대고모도 가진 재산을 모두 잃었다면서 데이비드를 찾아온다. 받기로 했던 유산까지 사라져서 도라와의 결혼은 위기 상황을 맞는데, 데이비드는 굴하지 않고 속기사 자격을 따고 스트롱 박사의 일을 도우면서 헤쳐 나간다. 뜻하지 않게 스펜로 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도라와의 결혼이 성사되고, 둘은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데이비드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생활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도라는 그저 철없는 아내라서 하인들을 다룰 줄도 모르고 가계부를 쓸 줄도 몰라서 데이비드와 도라 주변의 사람들은 그들의 살림살이를 몰래 훔쳐 가는데도 속수무책이다. 데이비드는 답답한 마음에 대고모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대고모는 이렇게 현명한 대답을 돌려준다.


“너는 정말로 사랑스럽고 상냥한 여자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단다. 그러니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평가해 주는 것이 네 의무이자 즐거움이기도 하지. 설교할 생각은 없지만 아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을 찾아내어 비난해선 안 된다. 그 아이가 갖고 있지 않은 성품은 네가 직접 잘 길러주어야 해. 그래도 안 된다면, 그것 없이도 지낼 수 있도록 익숙해져야 한다. 아무튼 얘야, 너희의 앞날은 너희 두 사람 손에 달려 있단다. 남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너희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그것이 결혼생활이야, 트롯.”(732)


대고모 또한 결혼 생활에 실패했지만 전남편이 도움을 청하러 오면 거절하지 않고 최대한 돕고 있었으며 남들은 알아주지 않는 딕씨를 향해서도 언제나 신뢰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데이비드는 대고모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도라를 자신의 힘으로 이끌면서 잘 해내려고 하지만 스스로를 ‘베이비 와이프’라고 부르는 예민한 도라는 변화시킬 수가 없다.


그런 도라와의 생활에 벅찰 때마다 데이비드는 아그네스를 떠올린다. 애니와 스트롱 박사를 이간질하려고 하는 우라이아의 간계에도 부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더욱 단단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데이비드는 “마음과 목적의 불일치만큼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없다.”(757)하고 말한 애나의 말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미코버 씨가 우라이아 힙의 계략을 폭로하고 딕씨와 트래들스의 도움으로 아그네스 집안은 위기에서 벗어난다. 그러면서 아그네스의 아버지인 위크필드에게 투자했던 대고모의 재산도 다시 되찾게 된다. 그리고 빚더미에 있던 미코버 가족들에게는 대고모가 호주로 이민을 제안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그들과 함께 갈 수 있도록 패커티와 에밀리에게도 이민을 주선한다. 그 와중에 몸이 약했던 도라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데이비드는 상심해서 혼자 해외로 가서 마음을 달랜다. 방황하다 돌아온 데이비드는 아그네스의 마음을 확인하고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


중심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데이비드의 결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1000페이지가 넘는 이 대작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등장해서 그들의 인생사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단순히 데이비드의 자서전만으로 볼 수 없다.


에밀리를 사랑하다 바다에 빠져 죽은 햄, 에밀리와 도망갔다가 결국 이른 죽음을 맞게 된 스티어포스, 스티어포스를 잃고 식물인간처럼 된 그의 엄마, 스티어포스를 사랑했던 미스 타틀, 에밀리의 든든한 조력자인 패거티씨, 그를 도운 마사, 남편을 잃고 함께 살아온 거미지 부인, 대표적 악당으로 등장한 우아이아 힙과 함께 교도소에 수감된 스티어포스의 집사 리티머, 그리고 난쟁이 모처까지. 데이비드를 도와준 친구 트래들스와 그의 부인 소피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으며 딕씨도 중요한 조력 인물로 꼽을 수 있다.


인물들의 이야기 사이로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 또한 날카롭다. 민법박사회관의 문제와 부패는 물론이고, 길거리에 넘쳐나는 배고픈 사람들보다 더 잘 먹고 지내는 교도소 수감자들의 모습과 그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교도소장의 허영심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디킨스는 교도소의 건축비와 유지 비용의 절반이라도 젊은이를 위한 공업학교나 노인을 위한 양로원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리 없다고 말한다.


언제나 약자들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고 제도적 개선으로 모두가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하는 디킨스의 태도가 이 작품에도 여지없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서 데이비드가 작가로서 성공하는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는 대체로 겸손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이비드의 어머니와 갓 태어난 동생의 관을 짜 준 장의사 오머가 그의 작품에 대해 “졸음이 온다는 얘기”를 약간 언급했을 때 스스로 반성한다는 대목에서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작가로 데뷔한 이래 거의 모든 작품이 흥행에 성공한 작가였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당대의 트렌드세터였던 디킨스의 작품이 현대에도 이렇게 읽힌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대 사람들의 입맛을 휘어잡으면서도 날카로운 관찰과 비판 의식을 녹여내지 못했다면 그의 소설이 지금까지 흥미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물들의 천태만상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당대의 사회상을 엿보면서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고전이라 칭하는 이 소설은 여전히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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