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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작가가 될 운명으로 태어난 한강, 그걸 읽을 운명의 타고 난 우리들

by 초콜릿책방지기

어느 날 저 먼 어느 나라에서 살던 마크 로스코라는 사람이 자기 손목을 긋고 죽어가던 날 무렵 생명이 생겨날 움직임이 있었고, 그 죽은 자의 몸이 땅속에서 채 썩기도 전에 한 생명이 잉태되었고, 그 생명은 태어나서 자기 운명을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작가가 된다. 우리는 명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질서 혹은 무질서, 우주의 움직임 속에서 살고 있고, 보통은 그저 주어진 운명을 살아가기 바쁜데, 그런 우리와는 달리, 그 모든 것, 작은 눈송이 하나조차도 운명의 일부로 하나하나 감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그리고 자신의 감각에 대해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라는 것, 그것을 피할 바에는 그냥 어루만지고 말겠다는 것이 바로 한강이며, 우리는 그 노래를 들어주는 운명으로 태어난 사람들이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을 탓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기 위해 가만히 이 시집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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