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책
어릴 적 즐겨 읽었던 위인전에 대해 어른이 되어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위인이라는 기준은 단편적이거나 일방적인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대체로 눈에 보이는 성취나 유명세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었는데, 살다 보니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평평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분명히 있고 그 능력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한 단면만을 향해 위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한 인간이 가진 다채롭고 신비로운 얼굴을 너무 뭉뚱그려놓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서전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 편견이 있었다. 자기 삶을 정리해서 내놓는 글이라고 한다면 기억 속에서 괜찮은 부분만 편집해서 내놓기 마련이라서 미화된 자신만 보여주는 것일 텐데, 그런 걸 읽느니 차라리 판타지를 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 왔다. 카를 융의 자서전 역시 읽기 전부터 그런 편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융이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신비적 체험 일화 같은 것은 스스로를 비범한 인물로 포장하고 싶은 욕구의 반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의 별 볼 일 없는 모습과 고민들, 딱히 뛰어난 면이 없었던 학창 시절의 모습들과 부모님에 대해 포장하지 않고 말하는 부분에서부터 진솔한 면이 느껴져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원래부터 비범했던 사람이 유명해지는 것은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융의 관심사는 진리에 대한 탐구이지, 자신이 위인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위치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으로 인식하면서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융이 엄청나게 대단한 가문의 후손도 아니고 부유한 집안도 아니고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유명세를 얻고 난 후에는 스스로를 포장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은데, 책을 읽다 보니 융이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정신치료자는 단지 환자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의사 자신이 자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필수조건은 이른바 교육분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기 분석이다. 환자의 치료는 말하자면 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의사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문제를 다룰 줄 알고 있을 경우에만 환자에게도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251)
그러니까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 자신을 객관화시킬 줄 아는 것, 그것이 융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분석을 통해서 얻게 된 통찰력을 포함해서 정신과 진료를 통해 얻게 된 지식으로, 인간 존재의 신비로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것 같다.
자기 존재의 신비로움을 탐구하다 보면 결국 인간 존재에까지 확장되는데, 이전 시대까지는 그 탐구가 인간의 의식 영역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 요소는 물론이고 선과 악, 존재론 등등까지 연구해 왔지만, 인간의 마음 혹은 무의식의 영역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에 융은 주목한 것이다. 융과 동시대에 활동했고 선배 노릇을 했던 프로이트도 있었지만, 융이 생각하기에 프로이트는 억눌린 성적 욕망만으로 절대적 ‘신’의 자리를 대체했다고 봤다. 융에게는 보다 확장된 인간의 무의식, 즉 집단무의식의 개념이 신비로움의 영역이었던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175)
융은 인간 존재의 개별적 의미도 소중히 여겼지만, 우리 개인이 누대부터 이어져 온 신화의 연결점으로서의 의미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치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는 연결되어 있는 유전자의 힘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신병이라는 것은 집단무의식이나 신화적 과거와의 연결점이 끊어진 상태, 심각하게 개별화된 상태 때문이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오늘날 소위 신경증 환자들 가운데는 이전 시대라면 신경증, 즉 자기 자신과의 분열을 겪지 않았을 사람이 적지 않다. 그들이 신화에 의해 조상들의 세계와 여전히 관련을 맺고 있고, 그리하여 단지 바깥에서 보는 자연이 아닌 실제로 체험하는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시대와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를 면했을 것이다.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270)
각종 정신질환이 우리의 일부가 된 이 시대에, 융이 말하는 대로 각 개인이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고독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무의식이 느낄 수 있다면 조금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고, 거만하게 우리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우리 옆에서 다정하게 말해주는 것 같은 이런 학자라면, 위인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9)
“나는 그 꿈을 여러 해 동안 골똘히 생각했다. 오랜 후에야 비로소 그 기이한 형상이 일종의 남근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33)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질서있는 우주 속에, 신의 세계 안에, 온갖 것이 태어나고 온갖 것이 이미 죽어 있는 영원 속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130)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어떤 사람에게는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든 ‘초인간적’인 것들, 눈부신 빛, 심연의 어두움, 시공의 무한성이 지닌 차가운 무감정, 비합리적인 우연세계의 으스스한 괴기성 등이 ‘신의 세계’에 속했다.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화적’인 것만은 아니었다.”(138)
“제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이런 과제는 일련의 결점으로 인하여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 결점이란 때때로 부리는 게으름, 의기소침, 침울,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한(수학!),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중성 등이었다.”(167)
“아무튼 나와 제2의 인격 사이에는 분열이 생겼으며, 그 결과 나는 제1의 인격 쪽으로 기울었고, 그만큼 제2의 인격으로부터 떨어져나오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유령이 가지고 있을 법한 어떤 특정한 개체라는 관념과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내가 시골 출신이기 때문이 그렇게 연결시킬 가능성도 있었지만 말이다.”(173)
“나는 철학 강의를 통해 마음이라는 것이 그 모든 것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 없이는 지식도 통찰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관해서 그 어떤 것도 들은 일이 없었다.”(193)
“나는 자서전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을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었어야만 했느냐에 관해 환상을 엮어나간다든지 생애를 위한 변명을 쓰는 그런 잘못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좋든나쁘든 다른 사람들의 판결에 맡겨진 하나의 사건인 셈이다.”(217)
“여성들은 대개 뛰어난 직관과 정확한 비판력을 지니고 있으며, 남자의 비밀스러운 의향을 간파할 줄 알고,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의 아니마(Anima)가 꾸미는 음모까지 꿰뚫어볼 줄도 안다. 여자들은 남자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남편이 초인이라고 확신하는 부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254)
“모든 질투의 핵심은 사랑의 결여에 있다.”(260)
“이러한 경험에서 중요한 점은 원형적인 상황(이 사례에서는 죽음이라는 상황이지만)과 관련하여 종종 관찰되는 전형적인 동시성 현상이다.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261)
“나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고 큰 성과가 있었던 대화들은 이름없는 사람들과의 대화였다.”(272)
“내가 아는 바로는 과학적 진리를 얼마 동안만 만족스러운 가설이지 모든 시대에 걸친 교리는 아니었다.”(282)
“항상 비종교성을 강조해온 프로이트가 일종의 교리를 준비했다는 것이었다. 또는 그가 잃어버린 질투하는 신 대신에 성욕이라고 하는 또 다른 강압적인 형상을 슬쩍 바꿔넣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282)
“동양에서는 ‘니르드반드바(Nirdvandva:양쪽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나는 이것을 명심하고 있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