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카렐 차페크의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자체도 정말 좋았지만 ‘로봇’이라는 단어를 이 작가의 형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재미있었다. 남들보다 앞선 참신함으로 이후 세대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의 생각은 참 경이롭다. 단순히 새로운 단어를 착안해 낸 것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내포한 것이 더 큰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은 패트릭 해밀턴의 희곡집 『가스등』도 그런 의미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희곡이 시작되기 전에 줄거리가 소개되어 있는데, 내용을 미리 알고 보더라도 결코 작품의 재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잭 매닝엄과 벨라 매닝엄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가스라이팅’이 여기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든 모르든 둘의 관계가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잭은 권위적이고 고압적이지만 위축되어 있는 벨라를 위해 연극을 보러 가자고 말하는, 전형적 심리적 지배자이다. 하녀와 함께 하는 일상적 대화에서도 끊임없이 벨라를 모욕해서 하녀보다 더 낮은 존재로 만들어버리는데, 벨라의 물건들을 숨기고 나서 책망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정상 범주에서도 벗어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벨라는 잭과 결혼하면서 인간관계도 단절되고 제구실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누구라도 정신줄을 놓아버릴 것 같은데, 다행히도 벨라에게는 엘리자베스라는 조력자가 있다. 엘리자베스는 형사 러프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벨라를 구출해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작가는 벨라의 심리 상태가 변화하는 과정을 굉장히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러프의 허술한 수사 과정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된다.
작가는 극을 통해서 벨라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과정과 그 결과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저 등 때문이에요. 가스등 말이에요. 불이 흐려졌다 밝아졌다 하거든요.”(44) 이 대사로 가스라이팅의 유래를 확실히 깨닫게 되는데, 벨라의 심리 상태를 쥐락펴락 하는 것을 가스등이 흐려졌다 밝아졌다 하는 것으로 상징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벨라는 잭이 밖으로 나가고 나서도 가스등의 밝기에 따라서 심리적으로 오락가락하게 되는데, 지배자가 부재한 상태에서도 가스등이 지배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작가가 심리적 변화를 그리는데 천재적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보여주는 것은 두 번째 희곡을 통해서다. 수록된 두 번째 희곡 <로프>는 초반 설정으로 나머지 극을 계속 긴장 상태로 몰아간다.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두 주인공 브랜던과 그라닐로가 순전히 재미로 로널드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은 사체를 궤짝 안에 보관하고,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시작한다. 심지어 로널드의 아버지인 존스턴 켄틀리 경까지 초대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파티를 이어가는 것이 가장 고약한 지점이다.
독자는 살인 사건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범인들이 들키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슴 졸이며 보게 된다. 이런 심리극의 묘한 점은 분명히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악인들이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도 같이 사건이 밝혀지느냐 아니냐에 전전긍긍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러프 형사처럼 둘의 살인 사건을 빨리 밝혀내야 하는데, 어떤 순간에는 브랜던과 그라닐로의 입장에도 서게 된다는 것이 아주 묘한 감정인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편에서 드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사이코패스적인 어두운 심리가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무고한 사람을 쾌락을 위해 죽여본다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설정이지만, 우린 또한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에도 매우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타인을 나와 똑같은 존재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대상으로 보는 것, 동일시할 수 없는 대상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사이코패스가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아마 브랜던처럼 제대로 된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도 지금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정상 세포가 변형된 암세포처럼 그들을 다루어 치료하는 법을 치열하게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이 극에는 루퍼트가 있으니 마음이 놓이긴 한다. 현실은 언제나 극처럼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