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맞이하는 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소설
우주선의 궤도가 하루 동안 지구를 16번 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가끔 올려다보는 하늘에서 금성처럼 반짝이며 움직이는 게 있다면 우주선의 움직임이라는 것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우주로 관심을 돌리기에는 주어진 사소한 생활의 부스러기들이 너무 많이 흩어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대신해서 누군가가(작가가), 우주와 우주비행사에 대해 생각한 것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매몰되지 않을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느껴지기도 한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서 인간 종족들끼리 이렇게 싸우고 불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말이다.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우주비행사가 되어야만 했던 것처럼 그렇게 운명 지어져서 좁은 우주선에 갇혀 하루에도 16번씩 궤도를 돌고 있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주선 안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나면 운명이 사뭇 가혹하게 느껴진다. 정해진 규칙과 선택의 폭이 좁은 생활 반경 안에서 살아가는 우주비행사들과 큰 차이 없이, 우리도 주어진 삶의 틀 안에서 쳇바퀴 돌 듯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을 돌려 우주선 바깥을 내다보면 그곳에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경이로워서 압도되는 그 아름다움 앞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운명 따위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선악이 없는 그 아름다움. 인간이 선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살아있어서 아름답다는 말처럼, 생명 자체를 향해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감정 덕분에 우리는 궤도 안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생명에 대한 경이,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마음과 같은 것은 궤도 바깥에 있는 것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코스모스의 바깥에 카오스가 있고 카오스의 대척점에 코스모스가 있는 것처럼.
불가해한 것, 신비로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알아야 존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아이러니와 같은 것은 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언제나 궤도 바깥을 상상하며 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계산되어 돌고 있는 이 딱딱한 궤도의 선이 어느 순간부터 지극히 문학적으로 느껴진다. 때로는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나 버린다면 감당할 수 없는 카오스에 맞닥뜨릴 것을 알고, 그걸 알면서도 언제나 벗어나길 상상하는 그 무한궤도.
이 소설에는 엄청나게 흥미를 끄는 사건도 없고 자극적인 서사도 없어서 읽고 나면 막막한 우주와 파란 지구라는 잔상만 남게 되지만,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읽을 만하다. 우주비행사들은 5년여 동안 좁은 공간에서 항상 붙어살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낸다. 우주선도 가야만 하는 길을 따라서 갈 때 사고가 나지 않듯이, 서로의 궤도를 지키며 일정한 거리를 잘 유지한다면 마음을 다치는 사고도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추석을 맞는다.
* 좋은 문장들
“지구가 우주를 질주하고, 시간에 취한 당신이 빛과 어둠을 뚫고 전속력으로 그 행성을 뒤쫓는 한, 끝은 없다. 끝은 있을 수 없다. 오직 돌고 돌뿐이다.”(27)
“이곳에 오기 전 어떤 사람이었으며, 훈련 환경이나 배경이 얼마나 달랐고, 동기와 성격이 어떻든, 어느 나라 출신이며, 자신들의 국가가 충돌하고 있든 말든, 이곳에서 이들은 우주선의 정교한 힘으로 동등해진다.”(37)
“애초에 이들은 힘을 얻으려고 우주에 온 게 아니다. 모든 걸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알고 더 겸허해지려고 왔다. 속도와 정지, 거리와 친밀, 덜해지고 더해지는 것, 이들은 자신들이 작은 존재임을, 아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는다.”(49)
“이제 인류는 자해와 허무주의에 빠져 닥치는 대로 깨부수는 10대 후반기에 접어든 게 아닐까. 살게 해 달라고 한 적도, 돌봐야 할 지구를 물려받게 해 달라고 청한 적도, 이토록 혼자 억울하고 암울하게 살게 해 달라고 바란 적도 없는데.”(54)
“너는 진보가 선하냐고 물은 게 아니었지. 인간도 선해서 아름다운 게 아니란다. 살아 있으니 아름다운 거야. 어린애처럼. 살아 숨 쉬며 세상을 궁금해하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에. 선한지는 상관없어. 눈에 빛이 감돌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 가끔은 파괴적이고 상처를 입히고 또 가끔은 이기적이지만, 살아 있기에 아름다워. 살아 숨 쉰다는 점에서 진보도 그렇단다.”(93)
“새삼 그런 생각의 무게와 과거의 힘을 느꼈고, 과거가 얼마나 은밀하게 미래를 만드는 가를 실감했다.”(105)
“치에 가족은 운명의 틈새를 비집고 나와 샛길로 비틀비틀 걸어갔다.”(107)
“국가들은 지워지고, 쪼개질 수 없으며 전쟁은커녕 그 어떤 분리도 모르는 세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 한꺼번에 두 방향으로 당겨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기쁨과 불안, 황홀과 우울, 애정과 분노, 희망과 절망을 느낀다. 전쟁이 끊이질 않고 사람들이 국경을 지키느라 죽이고 죽어 나간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저 멀리 작게 주름진 땅을 보고 산맥임을 알고, 웬 줄기를 보고 큰 강이 있음을 가늠할 수 있지만, 그게 끝이다. 장벽이나 장애물은 없다. 부족도 전쟁도 부패도, 뭔가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127)
“영원히 스스로를 응시하며 무엇이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지 알아내려 애쓰는 걸 보면 우리는 얼마나 불안정한 종족인지.”(186)
“이곳에서 우리 삶은 더없이 사소하지만 동시에 중대하다고, 되풀이되지만 동시에 유례가 없다고 당장이라도 일어나 말할 것만 같다. 우리 존재의 의미는 크지만 동시에 무의미하다.”(212)
“지구는 작지 않지만 거의 끝없이 이어진다. 유려히 흐르는 운문들의 서사시다.”(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