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7>

홍콩의 역사와 문화를 잘 펼쳐놓은 추리소설

by 초콜릿책방지기

소설은 당대의 문화를 집약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뛰어넘는 매체라는 점에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시대가 변해서 OTT에 압도적으로 밀린다는 사실은 일단 접어 두자.) 장르물로 분류되는 추리소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트릭과 추리가 이전보다 더 화려하고 복잡한 추리물이 등장하더라도 우리는 고전으로 분류되는 추리소설을 여전히 읽는다. 당대성을 담고 있는 최신 추리물이 당연히 더 세련된 방식을 보여주겠지만, 기본에 충실한 담백한 스타일의 고전은 질리지 않는 법이다.


그런 면으로 보면 이 소설은 기본에 충실한 추리소설 스타일에 배경으로 당대성을 담아내고 있다. 추리소설 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홍콩의 시대상을 담고 있어서 마치 역사소설처럼 느껴진다. 여섯 개의 장을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한 것은 추리소설과 역사소설의 조합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시간순으로 배치했다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인물들의 변화가 더 잘 보였겠지만 그 변화를 추적하는 방식의 재미는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관전둬처럼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형사라는 설정은 매우 흔하지만, 홍콩 사회가 배경이라는 점에서는 좀 더 다른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그의 타고난 능력도 중요하지만 홍콩이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갖출 수 있었던 능력 또한 중요했기 때문이다.


“관전둬는 1960년대에 경찰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고위 경찰간부는 일률적으로 영국인이었고 홍콩 현지인은 단지 말단 업무만 맡았다. 그러나 관전둬는 특별히 발탁되어 영국에서 2년간 연수를 받고 돌아온 소수의 홍콩인 경찰관이었다. … 그 시절에는 ‘영국에서 연수를 받았다’는 것은 승진통지서와 동일한 것이었다. 황제에게서 노란색 마고자를 하사받은 것처럼 조직 내에서의 특수한 지위를 상징했다. 가오랑산에겐 그런 기회가 없었다. 관전둬는 1967년 폭동 때 모종의 사건을 해결해 당시 어느 영국인 독찰의 눈에 들었다고 했다.”(361)


따지고 보면 관전둬는 완관탕, 즉 탕 아저씨의 도움으로 1967년 폭탄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영국 유학까지 가능했던 것이고, 유학 덕분에 다시 염정공서에 근무하는 그레이엄 힐 사건까지 좀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관전둬의 능력과 신념은 인정할 만 하지만, 홍콩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환경이 아니었다면 관전둬가 그렇게까지 승승장구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특징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홍콩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이 소설을 관통하지 않았다면 관전둬도 특별한 형사가 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홍콩에서 일어난 좌파 투쟁이라는 사실은 소설을 읽으며 알게 되었는데, 젊은 관전둬가 그때는 별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완관탕이 더 명석해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했던 점은 관전둬의 올바른 신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레이엄 아들의 인질 사건을 해결할 때는 유학을 다녀온 후의 능력이 장착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당시 홍콩 사회의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면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덤으로 느낄 수 있는 재미다.


“그레이엄과 아내는 ‘미스터 앤드 미세스 샤’로 바뀌었는데, 정작 그들은 날마다 홍콩 사람인 유모의 영어 이름을 부른다. 홍콩은 정말 괴상한 식민지였다. 점령한 자들은 점점 더 현지화되고 점령당한 자들은 갈수록 외래인을 닮아간다.”(485)


이후에도 홍콩 사회는 격심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게 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갔으며 중국보다 발전한 사회라고 인식하고 있는 면도 보여준다. “중국에서 온 사람이다 보니 어떤 언론매체에서는 그를 ‘낙후하고 배운 게 없는’ 이민자처럼 묘사하기도 했고, 그가 재난을 맞닥뜨린 것을 동정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오랫동안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인에 대한 ‘가난하고 문명화되지 못했다’는 고정관념은 홍콩 사람들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410)


홍콩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동시에 범죄도 거대한 폭력 조직의 형태로 뻗어나가면서 권전둬는 삼합회라는 조직을 상대해야만 한다. 이 대목에서 권전둬의 능력이 꽃을 피우는 시기라는 것이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어서 죽음을 앞두게 된 권전둬에게는 이제 자신의 뒤를 잇는 든든한 후배 형사가 사건을 해결한다. 권전둬를 이어갈 사람이 있다는 것은 홍콩의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홍콩은 동서양이 묘하게 만난 사회라서 다양한 갈등이 있을 법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보면 자신들만의 방법을 통해서 수용하고 융합시켜 나간 것을 알 수 있다. 폭발적인 성장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부패를 척결하려는 노력도 그치지 않았다는 것도 엿볼 수 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관전둬라는 인물은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간다. 어쩌면 그게 홍콩의 저력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관전둬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인정받는 형사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운 반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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