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마을>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중국의 한 마을을 느껴보는 시간

by 초콜릿책방지기

‘신장의 산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산문집이다. 언뜻 보고 에세이라고 생각하면 나 같은 독자는 그 안에서 길을 잃는다. 에세이는 작가가 겪은 경험이나 생각 등을 사실에 기반해서 쓰는 형식이지만, 산문집은 소설이나 기행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포괄적이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어야, 시간과 장소, 사실과 상상이 뒤섞여 있는 글들을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가 말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이 복잡하게 엉켜 있는 것을 푸는데 노력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준비가 된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작가가 그리고 있는 황사량이라는 낯선 지역에 대해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의 농촌 지역에 대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어서 여기서 그려내고 있는 황량한 지역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머릿속에서 그곳의 풍경을 좀처럼 구성해 내기가 힘들다. 작가가 수없이 말하고 있는 ‘바람’이 이 지역의 풍광의 기본값이라는 생각을 장착하고, 모래바람이 휘몰아치곤 하는 척박한 농촌을 상상하며 읽다 보면 이런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은 공기가 달리는 것이다. 바람이 한바탕 지나가면 원래 그곳에 있던 공기도 모조리 달려가 사라지고 만다. 어떤 냄새는 더는 맡을 수 없고, 어떤 물건은 더는 볼 수 없게 된다. … 바람은 한 마을에서 오래오래 숙성된 공기, 한 마을의 사람들이 들이쉬고 내쉬며 특별한 냄새를 갖게 된 공기를 다른 머나먼 곳으로 통째로 실어 나른다.”(38) 그런 마을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살아온 한 사람, 마을 바깥의 세계를 동경하기보다는 자신이 터 잡고 살아온 그곳에 온몸과 마음을 다 주고 살아온 사람이 하는 말들을 이제 귀 기울여서 들으면 된다.


작가는 그곳에서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사유와 통찰력을 만들어간다. 가난하고 끝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그 상황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그 마을이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 애정 덕분에 황량하기만 해 보이는 그곳에 의미가 생기고 낭만이 느껴진다.


“바깥에서 일하던 사람이 자기 집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모습을 보면, 자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런 느낌이 절로 일어난다. 밥 짓는 연기는 집의 뿌리다. 대지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늘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연기에 의지해 아득하고 낯선 바깥세상과 어떤 신비로운 연결을 유지한다.”(174)


자신의 마을과 살고 있는 집을 단단한 뿌리로 여기는 사람은 생활은 가난해도 마음은 가난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살기 어려워서 가축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고 하는 대목에서도 작은 후회는 있지만 그곳의 삶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작가가 보여주는 애정 덕분에 우리는 그 마을의 나귀와 소, 양과 돼지 등은 물론이고 개미나 모기에게까지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심을 말하자면, 고향에 대한 작가의 무조건적인 애정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고생만 하다가 떠나온 황사량이라는 고향과 허물어져 가는 고향집에 대한 미련과 애정은 좀처럼 와닿지 않는다. 사실은 그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그곳에 있었던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그렇게 크고 광활했지만 그곳에 있던 자신을 작은 일부로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여기며 바깥을 인식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자연과 가까이 있긴 해도 자연과는 분리되어 있는 비대한 자아를 가진 인간의 모습을 자꾸 의식하게 된다. 그런 인간은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세계와 전혀 다른 경험, 가치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익히 알고 있던 풍광과는 다른 것을 보는 것도 머릿속으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무엇보다도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 같은 글의 속도 덕분에 읽다 보면 명상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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