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함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
매일 똑같아 보이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가 문득 살 만큼 살았으니 이제 삶을 마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 이상 삶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이제껏 살아온 동안에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새롭게 삶의 의미를 찾기에는 모든 의지가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그럴 때가 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은지, 스스로 선택해서 무의미한 생을 마감하는 게 나을지, 과연 어느 쪽이 더 존엄한 인생인 것일까.
피오르 해안에서 페리 운전수로 일하고 있던 닐스 비크가 보여주는 마지막 하루는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이다. 아버지에게서 페리를 운전하는 법을 배워서 평생 그 일을 해온 닐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을 떠날 생각도 없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도 없다. 사랑을 했고, 결혼해서 아이도 둘을 키웠고, 이제 나이가 들어서 가족 모두를 떠나보냈다. 아내인 마르타는 뇌졸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고, 딸인 엘리와 구로도 각자 독립해서 멀리 가버렸다. 반려견인 루스도 이미 그들 곁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루스를 대신할 다른 반려견은 원하지 않는다.
평생 해오던 페리 운전수 일도 피오르에 현수교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쓸모가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닐스에게는 해야 할 일도, 보살필 가족도 없고, 그저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 남아있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닐스처럼 주어진 삶을 그저 성실하게 살아가는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가족에게 충실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주변 사람들과 문제없이 지내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변해간다. 정서적으로 의지하던 가족이 떠나고, 세상이 변하면서 평생 해오던 일은 사라지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사라져 가고 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할까. 언제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미와 재미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다가 문득 둘러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면 닐스처럼 조용히 배를 타고 피안을 향해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분신과 같은 배 안에는 항해일지가 있고, 그 안에는 추억과 떠나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모두 떠올리며 인사를 나누고 기꺼이 자신도 그들 곁으로 가는 편이 가장 존엄한 마지막일 수 있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닐스의 선택은 ‘자살’이라기보다는 ‘존엄사’에 가깝다.
소설은 닐스가 살아온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먼저 간 사람들의 모습들이 닐스의 관점으로 그려지고 있다. 닐스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가치 또한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라서인지 소설의 톤은 그에 어울리게 서정적이며 심지어 따뜻하게 느껴진다. 배경이 차가운 피오르이고, 소재가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아이러니한 감정인 셈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춥고 척박한 곳에 살더라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따뜻한 감정 앞에서 우리의 마지막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이 주는 커다란 미덕이다. 자주 잊고 살고, 멀리 있는 것 같아서 두려움으로 인식되곤 하는 죽음에 대해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다 나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사실을 좀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비참하게 살지 않기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