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영감으로 가득한 천재의 작품

by 초콜릿책방지기

이 소설은 보르헤스 전집이 나왔던 때 구입해서 몇 번을 읽어보다가 집어던졌던 책이다.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어떤 변화라도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다시 시도해 보았고 역시나 또 한 번, 조용히 내려두게 되었다. 읽기는 했지만 읽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나마 이번 시도에서 발견한 사실 두 가지는, 이 작가가 천재는 확실하다는 것과 그 천재를 읽어내기에는 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수록된 단편들 중 탐정소설 형태를 띤 것들은 재미가 있었지만 나머지는 도무지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향성』에서 느꼈던 신선함과 『챔피언들의 아침식사』가 주었던 메타픽션의 재기 발랄함과 『우주만화』에서 빠져들 수 있었던 광활한 환상성이 이미 충족된 뒤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점은 보르헤스는 그 모든 것을 혼자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특징들을 조금씩 떼어서 버무린 느낌이라서, 지금 읽기에는 강렬한 인상이 덜하다는 것도 재미가 덜했던 것 같다. 마치 그 모든 실험과 변형들의 원형이라서 시시한 느낌이랄까. 수많은 각주에 지쳐버려서 단편소설임에도 긴 서사시를 읽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도 있다. 제대로 된 감상을 말하는 독자가 되기에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그저 이렇게 느낌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이 후기 구조주의자들의 원형이라고 하는 것과 메타픽션과 상호텍스트성이라는 문학 실험의 원조라는 특성을 생각하면 보르헤스의 위대함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차라리 그런 사조가 농익은 작품을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들었던 의문은 다른 고전은 잘 읽게 되는데 유난히 보르헤스는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그가 제시하는 미로가 정말 지나치게 난해하기만 했던 것일까.


먼저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한 가지 요인은 매력적인 인물과 사건이 없었기 때문에 읽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책은 작가들을 위한 책, 영감을 주는 책으로서는 커다란 의미를 갖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짧은 소설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에센스는 두고두고 곱씹으면 맛이 느껴지지만 한 번에 알아차리기에는 그 농축한 맛이 너무 강해서 진저리 치게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이 책에 대해 물어본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천천히 음미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수록된 첫 단편은 틀륀이라는 상상의 혹성 이야기와 우크바르, 오르비스 떼르띠우스에 대해 찾아가는 여정이 실재하면서 실제로 있지 않은 백과사전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매우 매력적인 소설인데, 아직 이 소설의 의미를 충분히 다 파악하지 못해서 다시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원형의 폐허들」 또한 보르헤스식의 호접몽의 이야기인데, 우리의 영원한 질문과 근원적인 것에 대한 꿈이 담겨 있어서 또 읽고 단편이다. 「바벨의 도서관」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르헤스가 보여주는 도서관의 미로 안에 갇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붉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쓸모없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말이다.”(143)이라는 문장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빛으로 가득해진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은 “마지막 페이지와 첫 번째 페이지가 동일해 무한히 계속될 수 있는 그런 책”에 대한 언급으로 인해 『사탄탱고』가 떠오르면서, 보르헤스의 책은 모든 작가들의 교과서였거나 원형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의 천재 푸네스」는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사고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 기억의 한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칼의 형상」에서 보여준 빈센트 문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는 서술자가 섞이고 뒤집히면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 단편인데, 겁쟁이 배신자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반전을 통해서 인간의 이중성과 본성을 깨닫게 된다. 「죽음과 나침반」은 형사와 범인의 교묘한 추리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평범해 보이는 사건이 보르헤스의 손을 통해서는 야훼의 이름과 미로가 결합되어서 매우 신비로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비밀의 기적」은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는데, 찰나의 순간과 문학 자체의 목적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자로미르 흘라딕이 처형의 순간을 앞두고 아주 짧은 순간에 자신이 쓰고 싶었던 시를 완성하면서 하는 생각은 문학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그는 후대를 위해서, 또는 문학적 취향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신을 위해서 그 작업을 하는 게 아니었다.”는 그의 말을 통해서 어쩌면 그 순간은 그가 죽기 바로 전에 온, 에피파니의 순간이거나 구원의 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종교에 대한 보르헤스의 태도는 매우 현대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끝」과 「남부」 보여주는 가우초들의 칼싸움은 아르헨티나와 남미의 지역적 특색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롭다.


그렇게 다시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사실은 정말 좋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이고, 마음이 아프지만 받아들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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