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주고 싶은 마음으로 읽게 되는,
제목을 보고 무심결에 떠올랐던 소설은 『벙어리 삼룡이』와 『백치 아다다』였다. 떠올린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처럼 그런 엇비슷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을까 예상했기 때문에, 읽어가는 동안 레프 니콜라예비치 므이쉬킨 공작에게 사람들이 백치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도 또 다른 “진짜” 백치가 뒤에 가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부가 끝나가도록 그런 인물은 등장하지 않았고, 2부에 들어서자 어리둥절하고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므이쉬킨 공작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백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도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므이쉬킨 공작이 뇌전증을 앓아서 스위스로 요양을 갔다가 돌아왔다는 것 외에는 특이점이 없어서 그를 백치라고 부르는 이유를 좀처럼 납득할 수가 없었다. 뇌전증을 앓는다고 백치와 같은 상태로 보기에는 크게 무리가 있으며 스위스에서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러시아의 풍습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는 것은 므이쉬킨이 아니라 그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전자의 설정을 배제하고 나면 후자 쪽으로 좀 더 생각을 발전시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 안에서 처음 만나는 로고진은 공작을 ‘유로지브이’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성聖 바보 또는 바보 성자로 번역되는 기독교의 백치 성자, 고행자, 수난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므이쉬킨 공작을 부르는 “백치”라는 말은 단순히 지능이 낮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순수함에 더 가까운,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스위스에서 므이쉬킨 공작을 보살펴주던 슈나이더도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공작이 말한다. “내가 완전한 어린애, 즉 완전히 어린애이고, 키와 얼굴만 어른과 비슷할 뿐, 발달 면이나 정신, 성격, 어쩌면 사고력까지도 어른이 아니며, 예순 살까지 산다 해도 여전히 그대로일 거라 완전히 확신한다고 말이죠.”(134)
어른인데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다면 “백치”라고 볼 여지도 있는데, 므이쉬킨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가브릴라 아르달리오느이치는 므이쉬킨과 대화를 나누면서 므이쉬킨이 “때로는 무언가를 너무도 빠르고 세심하게 이해할뿐더러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전달할 줄 안다는” 것을 깨닫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까지 알아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예판친 장군의 가족들도 모두 므이쉬킨을 좋아한다. 예판친 장군도 처음에는 므이쉬킨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무시했으니 솔직한 태도로 인해 오히려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므이쉬킨이 “백치”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를 둘러싼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보면, 과연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고의 인맥과 막강한 재산을 가진 상류사회 인사라는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토츠키라는 인물은 이미 쉰이 넘었지만 스물다섯인 예판친의 맏딸 알렉산드라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예판친 집안에서도 그의 재산이나 따질 뿐 나이 차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토츠키가 고아나 다름없던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를 어릴 때부터 데려와서 보살펴준다는 명목으로 성적 노리개로 사용했는데도 그에 대해 누구 하나 비난 하지 않는다.
이볼긴 장군의 큰아들인 가브릴라 아르달리오노비치는 므이쉬킨이 그에 대해 ‘평범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자,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그보다는 차라리 악당이 나은 시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동생인 콜랴도 말하기를 “우리 시대에는 모두가 다 투기꾼”이라고 한다. 가냐의 친구인 프치츠인도 고리대금업으로 큰돈을 벌었다고 하며, 그에 대해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토츠키는 자신이 예판친의 딸과 결혼하기 위해 나스타시야 필립포브나를 거래를 통해 보내버리려고 하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나스타시야는 가냐와의 결혼을 거절한다. 그 과정을 보면서 불편해하는 사람은 오직 므이쉬킨 공작뿐이다. 공작은 나스타시야에 대한 연민으로 인해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지만, 공작의 마음을 간파한 나스타시야는 로고진과 떠나버린다. 사회의 정의를 외친다면서 공작에게 들이닥친 레베제프의 조카와 콜랴의 친구인 입폴리트와 부르돕스키도 결국 사기에 연루되어 있었고, 그들의 목적이 돈이라는 걸 알면서도 공작은 기꺼이 돈을 내놓겠다고 한다.
이런 천태만상의 행동들 사이에서 오직 공작만이 남다르게 행동하고 있으며,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백치”라고 부르면서도 공작에게 이끌리게 된다. 나스타시야가 공작의 청혼을 거절한 것은 공작이 나스타시야에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지만 나스타시야는 온갖 고통을 겪고 지옥으로부터 순결한 사람이 되어 빠져나왔으니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작의 순결한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걸 더럽히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인해 옆에 있기를 거부한다. 사기꾼 일당 중 하나인 켈레르도 돈을 달라고 하며 괴변을 늘어놓으면서도 솔직하게 인간의 심리를 인정하면서 돈을 빌려주는 공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공작에 대해 백치라고 부르는 걸 납득할 수 없다고 한다.(559) 리자베타 프로코피예브나도 모두가 공작을 속이는데도 속고 있기만 해서 얼뜨기라고 하면서도 공작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면서 1부는 끝이 난다.
여기까지 읽은 것으로 미루어볼 때, 공작의 미래는 전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사회는 타락했고 주변에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지켜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를 가리켜서 “선”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나약해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다시 생각해 보면, “선”이라는 가치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도스토옙스키가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준 이유가, 므이쉬킨 공작을 그 그림의 상징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