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는 희망
라슬로 작가의 책을 모두 읽기로 하고 나서 찾아온 걱정은 차가운 겨울 동안 이렇게 어두운 세계에 빠져 있다 보면 더 깊은 어둠으로 쉽게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탄탱고』도 충분히 어두웠고 『저항의 멜랑콜리』도 그렇다고 들었으니, 『라스트 울프』 또한 분량이 적긴 해도 그만큼 촘촘하고 빽빽한 어둠의 숲에서 길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펼쳐 든 『라스트 울프』는 의외로 은퇴한 독일인 교수라는 화자의 넋두리에 빠르게 빠져들게 되었고, 그가 싸구려 맥주를 한 잔 앞에 두고 자신에게 온 뜻하지 않은 행운에 대해 말해주는데도, 이미 잊힌 저술가이자 이젠 교정일로 근근이 먹고사는 자신에게 그 일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도, 전혀 친절하지 않은 바텐더는 건성으로 대충 장단만 맞춰주며 자기 일만 하고 있을 뿐인 상황에 어느 순간 몰두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 끊이지 않는 문장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화자의 정신머리 없는 혼잣말을, 마치 마지막 늑대가 하고 있는 말인 양,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것 같은 환상적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화자는 어느 날 스페인의 벽지인 엑스트레마두라에서 온 편지를 받는데, 밑도 끝도 없이 그곳에 와서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역사적 황무지인 그곳을 보고 나서, 무엇이든 써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무엇을 보고 써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화자는 그곳으로 가는데, 도대체 뭘 써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하던 때에 우연히 보게 된, “마지막 늑대가 스러졌다”는 표현에 마음이 동해서 그 늑대의 흔적을 추적하러 간다. 어쩌면 그 마지막 늑대가 지금은 읽히지 않는 자신과 같은 작가를 말하는 게 아닐지, 이제는 사라진 시대의 마지막 흔적이 아닐지, 그래서 그 늑대의 최후는 어떠했을지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늑대들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준 호세 미구엘이 진짜 마지막 늑대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말해주겠다고 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듣기를 거절한다. 그가 직접 그 마지막을 써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지만 쓰지 않을 수 없는 작가처럼, 마지막 늑대는 그곳에 있으면 죽을 줄 알면서도 떠날 수 없고, 그 이야기를 쓰는 작가는 마치 통역사가 그 이야기를 완전하게 통역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세계를 제대로 보여줄 수 없고, 바텐더가 그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는 것처럼 세상은 그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명, 마지막 늑대와 잊힌 작가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최후의 사냥꾼인 헤르만이 있다. 헤르만은 ‘모히칸 족의 최후’처럼 마지막으로 남은 사냥꾼이었는데, 인간에게 유해하다는 동물을 잡기 위해 덫을 놓으라는 임무를 받고 레메테 숲(은둔자의 숲)으로 간다. 그는 그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지만, 수없이 쌓이는 무고한 동물들의 사체들을 보며 어떤 깨달음, 혹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것이 잘못된 응징이라는 것을 문득 알게 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주어진 현실을 되돌리려고 하지만, 이미 변해버린 세계가 그에게 안겨줄 수 있는 운명은 죽음뿐이다.
「기교의 죽음」이라는 묘한 이름과 함께 등장하는 마리에타는 헤르먼의 다른 얼굴이다. ‘미시마 유키오와 상반하여’라는 부제를 안고 있는 이 기묘한 이야기는 마지막 늑대와 한쌍을 이루었던 어미 늑대의 죽음에 대한 상징이다. 할복해서 죽은 작가의 죽음과 내장이 터져서 죽은 어미 늑대는 이미지만으로도 하나로 연결이 되고, 그 늑대가 살았던 지역에서 나고 자랐던 마리에타가 “후회스러운 사고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 그렇게 모두 죽음으로 완결해 버린다.
마지막 늑대를 보고 온 화자가 허무감과 멸시감만 느끼며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며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것, 그런 상태로 헛헛한 웃음만 짓고 있는 상태는 작가로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결국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가며 하나로 묶이며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