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화자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정확한 나이도, 직업도, 파트너 혹은 자식에 대한 정보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서 독자가 알아서 짐작하며 읽어야 한다. 화자의 배경을 알 수 없는 소설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라서 그런 이유 때문에 읽기가 불편하지는 않다. 수녀원이라는 제한된 환경에 있는 화자의 행동과 생각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화자가 수녀도 아니라는 점 또한 모호함을 더한 설정이다.
화자가 수녀원에 들어가는 대목으로 소설이 시작하는데, 제목이 ‘상실의 기도’라서인지 화자가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계속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언급된 대목으로 짐작해 보면 알렉스라는 파트너와 헤어지고 나서 수녀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 같다. 수녀원은 35년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묻힌 묘지에 가까이 있는 것 같으니 고향 근처로 갔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닷새만 머물기로 하고 들어간 수녀원에서 어린 시절과 어머니를 떠올리다가 자신의 ‘바닥’을 느끼고 나서는 더 오래 머물기로 결정한다.
화자는 수녀는 아니지만 수녀들과 동일한 생활을 하며 지낸다. 수녀원은 재정이 넉넉지 못하니 다들 쉴 틈 없이 일하고 있고 화자도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쥐 떼의 습격으로 일은 더 늘어난다. 또 하나의 큰 이벤트는 태국에서 매춘부들을 일하다 살해된 제니 수녀의 유해를 안장하는 일이다. 제니 수녀의 유해를 모시고 온 사람은 화자가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했던 헬렌 패리다. 헬렌 페리는 정신병이 있는 어머니에게서 학대를 받았고, 학교에서도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사람이다. 화자는 그 시절에 자신도 그런 폭력적 상황에 가담했던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헬렌에게 사과하지만 정작 헬렌은 그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다.
화자와 마찬가지로 헬렌 패리도 환경운동과 인권운동에 투신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헬렌이 더 영향력이 커졌고 유명한 듯하다. 화자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운동에 참여해 왔음에도, 정작 자기 스스로는 구하지 못하고 수녀원에 와 있는 중이지만 헬렌은 여전히 세상을 구하고 있는 중인 듯하다.
수녀원에 머물며 용서와 속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며 화자는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의 삶이 남긴 자취와 크고 작은 잘못들, 주변의 평가와 그에 대한 반응을 계속 생각한다. 그렇게 화자가 떠올리는 것이 소설의 서사가 된다. 화자가 기억 속에서 가져오는 이야기들은 크고 작은 자신의 일면일 수도 있다.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스스로가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며, 자기를 구원하기 위한 ‘기도’일 수도 있다. 함께 지내는 수녀들도 불완전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보면서, 불가해한 인간 존재에 대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차츰 깨닫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익숙해졌다, 기다림에. 불완전하게 서서히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 때로는 결국 답을 얻지 못하는 질문들에.”(86)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것 같은 이 소설은, 큰 기대 없이 덤덤하게 읽어내기에는 괜찮을 것 같다.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면 소설의 화자처럼 시도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다. 그 이상의 재미를 기대한다면 다른 소설을 읽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