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도둑

덕후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by 초콜릿책방지기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논픽션 소설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 사건과 실존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책을 읽고 나면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 꼭 찾아보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동이 오래 가면 등장하는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을 찾아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픽션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면이다. 실제 사건을 찾아보면서 책에 대해서 더 오래 곱씹어 보게 된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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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논픽션 소설에 대해 오랜 편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먼저 밝히고 싶다. 오래전, 논픽션 소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각인되었던 탓이다.

소설 습작을 하던 시기에 합평을 하던 모임이 있었는데, 돌아가며 거의 한 달에 한 편씩 발표를 하고 평가를 받는 모임이었다. 한 달에 한 편을 쓰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쉬운 일 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좀 벅찬 일이었다. 사건과 인물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종종 한계에 부딪쳤는데, 어느 날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그 사건을 소재로 소설을 쓰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던 합평자 중 한 명이 내 소설을 보고 후하게 평가를 하다가, 그 소설이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혐오에 가까운 평가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그 반응과 평가를 보면서 당시에 들었던 의문은 허구적인 이야기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러고 나서 깨달은 사실은 한국 문단에서는 논픽션 소설에 대해서 아주 많이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합평자뿐 아니라, 문단 안팎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 인물과 사건에 기반한 이야기나, 조금이라도 그런 것들이 연상이 될 만한 소설들에게 내리는 평들이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자신의 경험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어느 만큼 녹여 내느냐에 따라서 작가의 능력 혹은 상상력을 평가하곤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970년대 트루먼 카포티를 필두로 해서 뉴저널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논픽션 소설이 크게 유행하고 성공한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개념은 일정 부분 통하더라도 논픽션 소설의 영역에 대해서는 문학성을 그리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개념 자체에 대한 논의도 많지 않은 상태가 아닐까 싶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이 소설을 읽을 때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꽤 많이 노력했다. 작품 자체로 보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다. 처음 1부를 읽을 때는 흥미로운 역사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어떤 한 대상을 위한 인간의 집착 혹은 치밀한 탐색은 인간 역사의 일부분을 만들어왔고 변화시켜왔다고 생각한다. 새의 입장에서 보면 잔혹사겠지만 인간이 발견하고 성취해온 역사로 따지면 말이다.


2부로 들어서면서 여전히 흥미진진하긴 했던 것은 트링 박물관 도난사건을 작가의 필력으로 좀 더 재밌게 풀어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부에서도 밝혀지지 않는 진실과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소설적 매력을 반감시켰다. 아마도 실화를 기반으로 해서 시원스러운 해피엔딩 혹은 극적인 결말을 이끌어낼 수가 없었겠지만,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은 작가의 태도 - 그러나 애드윈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 에서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적극적으로 어느 한쪽에 서서 이야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독자는 작가를 욕하거나 소설 속 인물을 단죄하거나 어느 쪽이든 분명하게 선을 그어서 판단하고 의미를 구성하기 쉬웠을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남지 않는 그렇고 그런 사건들의 연속이 벌어질 뿐이다. 그게 바로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극적인 의미,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것이다. 소설이 현실과 똑같은 이야기를 재현할 뿐이라면, 굳이 소설을 찾아서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덕후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어떤 한 대상에 대한 집착이 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고상한 측면이 극대화된 것 중 하나인지 혹은 병적인 것이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적, 과학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 과연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미적 추구에 선행하는 가치인지, 그런 의미 또한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지구를 파괴해도 괜찮다는 면죄부가 아닐지, 미적 추구의 허용치는 어디까지인지,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책의 문학성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한다면 사실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읽을 만한 것인가 하는 문제로 접근한다면 그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모두에게는 아니라도 누군가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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