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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 Nov 22. 2020

한국어로도 살 수 있는 거였어

2. 여기 코리아타운인가 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사는 이곳은 코리아타운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곳이다.


 다행이었다. 한국 슈퍼, 한국 식당, 한국 부동산, 한국 빵집, 한국 의사(한의사도 있다), 한국 미용실, 한국 안경점, 한국 교회, 한글 학교(심지어 한국 학원도 있다. 하아-)... 한국에서 살았을 때 편의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해외에서 이렇게 누리고 산다는 건 해외 이민자들에게 부러움을 받기 충분조건이다. 처음 해 보는 해외살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했고 그랬기에 적응도 빨랐다.


 불행이었다. 한국 편의시설이 많다는 건 그만큼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거다. 마음이 맞는 한국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됐고, 한국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을 이용했다. 한국어로도 생활하는 게 가능했다. 독일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어를 사용할수 있는 빈도는 점점 낮아졌다.(관공서 일같이 중요한 일은 영어를 꽤나 잘하는 남편 담당이다)





 

 나름 재밌게 잘 살았다. 물론 한국 커뮤니티 안에서만.

 독일에 살고 있으니 독일 사회에 담을 쌓고 살 순 없는 노릇이니 불편한 게 없진 않았지만, 참을 수 있을 만큼이었다. 이따금 생기는 불편함, 답답함? 그건 외면하면 해 버리고 싶었고, 외면했다.

대학을 갈 것도 아니고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닌데 굳이 어렵고 입에도 잘 붙지 않은 독일어, 왜 써야 하는데?


 외국에 오래 살면 저절로 그 나라 언어가 되는 거 아닌가. 천만의 말씀!(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은 세계 어딜 가도 한국 사람, 한국 커뮤니티가 없는 곳이 없다. 독한마음으로 공부하고 한국인들과 적당히(?) 관계를 맺으면 좋겠지만... 하루 이틀 있다 한국으로 돌아갈 것도 아니고, 익숙해지지 않는 맛없고 짠 독일 음식들,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는 문화충격, 어쩌다 마주하게 되는 인종차별(하지만 따뜻하고 친절한 독일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환경에서 한 달을, 6개월을, 일 년을 살다보면... 적당함의 조절은  불가능 해진다.

 한국 음식이, 말이, 문화와 정서가 그리워진다. 그리움의 무게는 시간에 비례해져서 점점 더 한국 사람을 찾게 된다.(독일어 공부를 위해 일부러 한국인과의 교류를 안 하는 사람들도 드물게 있다)


 처음엔 누구나 열정을 가득 품고 외국 땅에 발을 디디지만, 그 열정을 쭉 유지하기란... 휴...

설마 나만 그런가. 아니다. 주변에 간증들도 있다. 독일어를 못/안하고 오랫동안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얼마동안 이곳에 살았냐는 질문에 작년에도 올해도 한결같이 5년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살고 있는 연차에 비해 늘지 않는 독일어가 부끄럽다며 독일 산지 5년, 그 이후부턴 쭉 5년이란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돼버리기 직전이다. 내가 독일에 온 지 곧 6년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학원에서 겨우 쌓은 기초 독일어 실력으로 독일 마트를 다녀오고(슈퍼마켓까지 남편을 보낼 수 없는 노릇이니) 그곳만 무사히(?) 다녀오면 평화가 찾아왔다. 나머진 한국 아닌 한국인 듯한 곳에서 살면 되니깐.


 그렇게 그렇게 독일어를 점점 떠나보냈다.




(요즘은 한국에서 이미 독일어를 잘 배워 유학 오는 학생들, 취준생들도 있고, 더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시에 처음 배우는 독일어를 충실히 잘 익혀나가는 기특한 청춘들도 있다. 나의 글은, 어느 날 갑자기 독일 땅에 살게 된 어느 주부 이야기임을, 그 주부의 비슷한 또래 사람들의 이야기 기억해 주시길)



4년 전, 이곳에서 열린 촛불집회. 한국 사람이 많은 이곳은 당연히 깨시민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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