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진지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엄마, 나 학교 하루 쉬고, 체험학습 다녀와도 돼?"
"학교를 쉬고? 왜? 누구랑?"
그렇게 받아쳤지만, 아이는 코로나 키즈로, 제대로 된 입학식, 소풍의 추억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주말에는 늘 가족모임과 교회모임이 있어 학교 친구들과는 더욱 추억이 없습니다.
잔뜩 기대했던 수학여행, 체험학습이 며칠 전 모두 취소가 되었습니다.
엄마 탓도 아니었지만, 그런 딸이 안쓰러워, 주말엔 사람이 많을 테니 그러자고 했습니다.
아이는 놀이공원에 가는 대중교통편이 무서웠나 봅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놀이공원까지 걸어가는 것을 해보지 않은 탓이겠지요. 교통편도 조심히 부탁합니다.
"엄마가 데려다줄 수 있어?"
6학년인데 너무 세상물정 모르게 키웠나 싶어, 자책을 하다가 그래도 딸아이니까 이게 맞다고 우겨보았습니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조금 늦게까지 한 시간을 더 자고 일어난 아이는 신이 나있습니다.
엄마도 딸이 행복하니 좋습니다. 아이를 놀이공원 정문에 내려주고 표는 잘 내고 들어 갔는지 전화로 확인을 한 후에 집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뭐라고... '그래, 처음이어도 잘 해냈구나.' 싶어 흐뭇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잠시 후 전화벨이 다시 울립니다.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는 전화가 켜진 줄 모르고 신이 나 놀이공원 투어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아이가 얼마나 신이 나고 행복한지, 그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습니다. 잠시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제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았습니다.
"야! X나 신나."
아이의 말이 아닐 거라 생각해 더 듣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몇 분 동안 한 두 차례 더 비속어를 말하더군요.
저나 신랑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였습니다. 사실 가족들 누구도 욕을 하는 사람이 없으니, 학교생활 중에 배웠겠지요. 또래 친구들보다 더 어린아이들도 그런 욕과 비속어 사용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 딸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가 등원, 등교를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예쁜 말 고운 말"이었습니다. 상상도 못 했습니다. 배신감이 느껴졌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도 어린 동생들을 얼마나 예뻐하는지, 칭찬이 자자한 아이입니다. 요새 사춘기라 다소 시니컬해지기는 했지만, 어른들께 예의도 바르고 태도도 바른 아이입니다. 아이를 아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잘 키웠다고, 잘 자랐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학교에서도 담임선생님께 늘 부탁드리는 것은 <바른 태도로 앉아있게, 고운 말 사용하게> 지켜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도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보지 못했고, 늘 칭찬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중적인 아이의 학교생활을 보고야 만 것입니다.
마음 깊이 울었습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그 비속어를 들었을 내 딸, 그리고 딸의 가장 좋아하는 친구. 기분 나쁜 일이더라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조차 하면 안 되는 말을 가장 아껴줘야 하는 나 자신과, 친구에게 라니... 참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친구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들어오는 딸을 앉혀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을 것을 압니다.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말이라면, 고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드리는 거야. 교회 오라고 전도하는 것, 선교를 가는 것. 그런 것보다 훨씬 어렵고 중요한 일이 우리의 삶 속에서 빛이 되는 거야.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 고운 말, 배려하는 마음이 수학문제를 잘 풀고, 1등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해. 게다가 말에는 힘이 있어. 그 말을 가장 먼저 듣는 건, 너잖아. 네가 그렇게 형편없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하찮은 존재야? 흥분하면 말이 빨라지고, 말을 빨리 하려면 생각 없이 뱉어내는 말속에 실수할 경우가 많아. 차분히 생각하고 천천히 말하면 좋겠어."
잔소리가 또 길어지고, 아이는 다시 한번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안되니 답답하기만 하다. 기척이 없는 아이의 방 문을 열어보니,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다. 나는 또 믿어주고 기다려 줘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