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풍경]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선생님께 질문하는 것도 망설이는데 다른 친구에게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질문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 비롯됩니다. 아마 “이런 것도 모르냐?”며 무시하는 눈초리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질문을 할 때면 그 질문이 아주 쉽고 정말 상식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좋은 질문이라고 말해 줍니다. 만약 다른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무시하려는 낌새를 내비치면 그 질문 속에서 다른 내용을 이끌어내어 더 수준 높은 차원의 내용도 알려줍니다.
[마음의 문구]
불치하문 (不恥下問) :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모르는 걸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논어(論語)》 〈공야장〉
[행간의 지혜]
선생님이 질문을 귀하게 여기면 질문을 한 아이는 우쭐해하면서 다음번에도 질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됩니다. 질문의 수준이라는 것이 엄연히 있게 마련이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무시할 만한 질문이란 없습니다.
정말 몰라서 툭 하고 던진 질문에 우리가 성심성의껏 답해준다면, 우리 아이들이 장차 누구에게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어볼 수 있는 당당한 사람으로 자라지 않을까요. 질문은 모르는 것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라, 배움을 향해 나아가는 가장 용기 있는 첫걸음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 많이 아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더 위대하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 ‘공문자’라는 높은 벼슬아치가 있었습니다. 그가 죽고 나서 나라에서 ‘문(文, 학식이 높고 훌륭함)’이라는 최고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붙여주자,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그가 완벽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좋은 이름을 주었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는 머리가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일을 전혀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았기(불치하문) 때문이란다.”
진정한 지혜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누구에게든 배우려는 겸손함’에서 나옵니다. “이런 것도 몰라?”라는 비웃음이 무서워 입을 닫기보다, 모르는 것을 당당하게 질문하는 아이들이야말로 성현들이 칭송했던 ‘진짜 실력자’로 성장할 씨앗을 품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