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썬맨 Oct 24. 2021

북한 아저씨의 꿈은 통일

진주가 고향인 러시아 사는 북한 아저씨의 꿈

블라디보스톡 젊음의 상징인 아르바트 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한 아저씨를 만났다. 지나가는 길에 구두닦이 통 옆에 한글 성경책이 놓여있는 게 아닌가. 혹시나 한국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내가 성큼 다가갔다. 


“어?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희는 부산에 온 신혼부부예요. 혹시 한국분이세요?”

“… …”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셨다. 


"난... 진주가 고향인 사람일세.” 

말의 억양이 조금 이상했다. 

“아 네~ 진주에서 오셨구나. 저희랑 가깝네요? 러시아에는 언제 오셨어요?”

“…20년 전에 왔지. 지금은 러시아 사람일세. 아내가 러시아 사람이고 딸은 대학생이야. 그래서 나도 러시아 영주권이 있는 사람이지.”

“와 러시아 영주권이 있으시군요. 20년이나 이곳에서 지내셨다니 대단하세요. 한 번씩 한국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아무 생각 없이 대화를 이어간 아내. 이윽고 아저씨는 어두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가.”

“네? 못 간다고요?”

“...난 못가.”

“왜 못 가세요? 여기랑 진주는 그렇게 멀지 않아요 아저씨.”

“… 지금 영주권이 러시아 이기는 한데 사실 나는 북한에서 왔수. 경남 진주는 내가 어릴 적 태어난 고향이지. 그래서 남한에는 가고 싶어도 내가 못가.”

“아…”


러시아에 와서 북한 사람이랑 만난 것도 처음이지만, 가슴 아픈 분단의 현실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진 또 처음이다. 사실 분단이란 게 지금의 우리 세대에겐 뉴스나 영화에서 다룰법한 이야기이지 현실적으로 와닿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면에서 눈앞에 북한 사람을 마주 대하고 듣는 분단의 아픔은 충격적이었다. 


겁이 많은 나는 혹시 또 다른 감시원들이 있어서 우리나 아저씨에게 피해라도 갈까 봐 괜히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자신은 러시아 영주권자라서 괜찮다고 하셨다.


“아저씨 제가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될까요?”

“그래 물어보게.”

“아저씨의 꿈은 뭐예요?”

“나? 음… 죽기 전에 통일이 돼서 고향 진주에 한번 가봤으면 좋겠구먼.”

“아… 얼른 통일이 되면 아저씨 꼭 진주에 가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어디서든 행복하게 부부가 싸우지 말고 지내야 돼. 다시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남한에서 행복하게 사시오.”

“네 아저씨도요.”


무언가가 되겠다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더 어려움이 많아 보이는 아저씨의 꿈. 학창 시절 음악시간 때만 해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하며 노래를 불렀지만, 통일을 놓고 미국과 중국 등 여러 나라와의 외교적 관계 문제나 통일 이후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지금의 상황을 놓고 보았을 때, 여전히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 꼭 아저씨가 진주를 방문해서 감격의 눈물과 함께 아니 진주가 이렇게 많이 달라졌어? 하고 눈이 휘둥그레지시는 장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뭔가 씁쓸하고 서글픈 이유는 뭘까.   


한국어 성경을 읽고 계시던 구두닦이 아저씨
북한에서 온 아저씨의 꿈은 통일


이전 09화 사상 최악의 호스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