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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맨 Oct 24. 2021

혁명광장에서 느낀 사람냄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 시장이야기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김태희가 밭을 갈고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처음으로 도착한 나라가 러시아이기 때문에 우즈벡은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에도 김태희가 밭을 갈고 있다. 아니 러시아에는 김태희가 시장에서 빵을 팔고, 생선을 판다. 아내를 옆에두고 이게 왠 김태희타령인가 할수도 있지만, 혁명광장에서 열리는 주말시장에 와서 느낀 생각이다. 

한국으로 치면 한참 꾸미고 놀러나갈 이쁠나이의 딸들이 부모님과 함께 시장일을 돕고 있다. 러시아답게 크도크고 늘씬한 미녀들이 가사일을 돕는 모습이 착하고 이쁘게 보인다는 말이다. 시장전체 분위기가 훈훈해 보이는 느낌이다. 아 그렇지만 여전히 내게는 아내가 최고다. 하하. 


“빵사세요 빵”

“신선한 생선이 있어요 생선”

“자 오늘 금방 농장에서 따온 야채가 가득합니다.”


물론 한국어 서비스가 아니라 러시아 말로 들리는 음성들이다. 간이천막이 길다랗게 이어진 형태로 주말시장은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는 우리나라 인구의 세배에 해당하는 1억 5천만명 정도가 살고있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80%는 우리가 흔히아는 금발머리의 러시아 인들이지만 그외 무려 160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타타르족, 우크라이나인, 바시키르인, 추바시인, 체첸인, 아르메니아인 등 주요 민족 외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러시아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민족인 고려인들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블라디보스톡에서는 러시아 인들외에도 몽골이나 한국사람을 닮은 아시아계열 러시아인들도 많이 보았다. 


“나는 소라빵이 먹고싶은데?”


외국에서 시장구경을 한다는 설레임에 아내가 신이났다. 커다란 소라모양 빵에 생크림이 듬뿍 들어있었다. 가격은 40루블 우리나라 돈으로 800원이다. 외국에 가면 먹는게 가장 고생이라고 하는데 다행히 러시아 마트에서 컵라면을 구할 수 있어서 끼니를 떼우는데 어렵지는 않았지만 입맛이 다른 러시아 음식에 몇번 실패하고 나니 함부러 뭘 사먹는게 꺼려지는 상황이었다. 상큼한 생크림과 부드러운 빵이 입안에 가득 맴돈다. 마치 구름을 한입 베어먹으면 이런맛이 날 것 같다. 한입씩 사이좋게 베어물며 800원의 행복만찬을 마쳤다. 입에 묻은 생크림을 닦을 틈도없이 우리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에 쏠렸다.


처음엔 우리눈이 잘못됐나 의심했다. 분명 금발머리 러시아 아줌마가 러시아말로 팔고 있었다. 근데 저건 김치가 아닌가. 넉살 좋게생긴 아줌마가 한국처럼 한줄 쭉쭉 찢어서 시식회를 하고 있었다. 아줌마가 우리에게 웃으며 찢어진 김치를 건냈다. 우리의 손은 이성이 통제할 틈도없이 자석처럼 아줌마가 내미는 김치로 갔다. 뭐랄까 약간 뭔가 싱거운 것 말고는 맛도 그렇고 영락없는 우리의 김치 바로 그맛이었다. (나중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김치 금단현상에 시달릴줄 알았으면 진작 한포기 샀어야 했는데 아쉽다.)  암튼, 진공포장된 마트김치가 아니라 이렇게 직접 담근 김치를 보게 될줄은 몰랐는데 너무나도 반가웠다. 한인사회가 아니라 러시아인들이 이용하는 시장에서 김치를 이렇게 담아 파는걸 보면 현지인에게도 김치가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았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라면을 먹을까.”


한 라면 광고에서 나왔던 CM송인데 러시아에도 이 같은 논리가 적용되었나 보다. 마트에가면 도시락라면을 주축으로 한 한국라면이 부스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데 그건 상당한 러시아인들이 라면을 소비하고 있다는 증거. 고로 라면은 김치랑 먹어야 제맛이라는 논리가 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낯선 세상에서 새로운 문화를 보는것도 즐겁지만, 낯선 세상에서 익숙한 문화를 만나는 것은 즐거움 그 이상의 반가움이 있다. 러시아 옷으로 갈아입고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 버스들이 그렇고, 마트에서 식문화 혁명을 주도하는 한국 라면과 식품들이 그렇다. 또 새빨갛게 매운맛으로 러시아 가정 식탁을 점령해가는 김치가 그것이었다. 소리없이 활동중인 한류특공대를 이곳에서 만난건 큰 수확이다. 


그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굵기가 굵고 깨끗한 마늘하며, 체리종류 과일인 것 같은데 색깔이 알록달록한게 한입 탁 깨물면 입안에서 터질 것 같은 저렴한 과일들, 한 덩어리에 8,000원밖에 안하는 어른 팔뚝만한 크기의 냉동연어, 순두부같이 생긴게 약간 시큼한 맛이 나지만 몸에도 좋아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먹는 라코타 치즈. 이 치즈는 한국에서 비싸게 유통된다고 한다. 해바라기씨를 비롯한 각종 견과류들 등 어릴적 엄마따라 시장구경 다니던 느낌으로 우리는 주말시장을 마음껏 구경했다. 


고급 쇼핑센터나 레스토랑, 맛집이나 투어 프로그램 등 다른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을 위한 여러가지 상품들이 있지만 아내와 나는 이런 사람냄새나는 서민적인 여행이 좋다. 현지인들의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보고, 그들이 이용하는 마트를 가보고, 시장을 가보고, 인사하고 친구가 되어가는 여행. 우리가 가진 비용으로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껴서 다니는게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성향자체가 로컬 분위기에 맞는 여행을 추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남자라서 그렇다고쳐도 아내가 그런 검소함으로 우리 형편에 맞는 여행을 즐겨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다. 


“안녕하세요.”

“오 안녕하세요.”


한 아줌마가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신기한 마음에 대화를 이어가려 했지만 인사만 아실뿐 알아듣기 힘든 러시아말로 말씀하셨다. 말이 안통하면 뭐 어떤가 마음이 이미 통했는데. 우리는 아줌마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대번에 알아들으신 아줌마는 함박 웃음을 지어주신다. 


“자~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찰칵.”


그렇게 우리는 러시아에서 친근하고 진한 사람냄새를 맡는다.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에 열린 시장
와... 보기만해도 맛나 보이는 빵들
김태희가 밭을 갈고 채소를 판다는 소문은 새빨간 사실이었다.
어? 이건 김치???? 러시아에 가면 김치도 팔고~
아로니아 같은 비타민 듬뿍 과일들
주말 장을 보러 온 사람들
이모님과 찰칵
김치 먹는 듯한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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