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썬맨 Oct 24. 2021

강도와의 신경전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기 직전 대합실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기 위해 도착한 블라디보스토크 역 안. 테러의 위협 때문인지 입구에서부터 경찰들의 삼엄한 경계가 있었다. 당연히 모든 짐은 검사대를 통과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로봇처럼 딱딱한 표정의 경찰들 때문에 약간 긴장되었지만 아무 문제없이 짐은 통과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봐서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들도 사람 냄새나는 이들이었다. 먼저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있던 경찰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No” 


부탁이 민망해질 만큼 단호한 거절이었다. 번지수를 잘못짚은 것 같다. 외국 여행객을 환대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만큼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내는 드디어 일주일간의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마치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다는 설렘에 부풀어 있는 것 같았다. 역 안을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며 신기한 듯 바라보는 모습이 귀여운 꼬마 아이 같다. 


우리는 어제 미리 인터넷 표를 실물 티켓으로 바꾸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표를 바꾸는데 애먹고 있었는데 마리아라는 한 청년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마리아의 등장으로 우리는 머리를 싸매도 풀리지 않던 문제를 푼 사람처럼 쉽게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역사 내에는 비용을 지불하면 샤워를 할 수 있는 곳도 있다며 친절하게 알려주는 마리아. 그래 이것이 진정한 러시아의 모습일 것이다. 경찰들의 저 딱딱함은 업무상 어쩔 수 없는 것일 터 우리는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해 아래층 승강장 근처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우리 기차 시간은 12시. 백야현상으로 11시가 다될 때까지 창밖은 대낮처럼 환했다. 앞뒤로 매고 있던 배낭에 7일 동안 기차에서 먹을 식량까지 내려놓은 우리 짐은 거의 이삿짐 수준이었다. 의자에 앉아 한참을 쉬다가 아내는 화장실에 갔다. 아직까지 대합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건너편 자리에 앉아있던 외국인 남자도 짐을 내려놓은 채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나는 창밖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기 위해 삼각대와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때였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한 남자가 계단에서 내려왔다. 자리를 비운 외국인 남자 자리 근처에 앉더니 금새 졸기 시작했다. 


‘아이고 기차 타러 온 사람이 저렇게 술에 취하면 어쩌나.’


생각하며 촬영을 하고 있었다. 


“부스럭,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조는척하던 남자는 외국인 남자의 가방을 만지기 시작했다. 가방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자기 쪽으로 슬그머니 당기고 있는 상황.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범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강도였다.


이 공간에는 나와 강도 단둘만 있는 상황. 어떤 조치가 필요했다. 그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걸 모르는 듯 마지 자기 가방이라도 되는 듯 지퍼를 열어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내가 들어왔다. 혹시라도 아내에게 해가 가진 않을까 바짝 긴장이 되었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리에 와서 앉았다. 나는 아내에게 짐을 맡기고는 도움을 청할 사람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내가 다가가서 하지 말라고 말할까?’


긴장된 상황이었다. 그 순간 위층에서 경찰이 내려왔다. 경찰에게 현장을 들키고만 강도는 흠칫 놀라며 행동을 멈추고 빈자리로 건너가 자는 척을 했다. 나는 인상을 쓰며 손짓으로 저 사람이 강도라는 사인을 경찰에게 보냈다. 경찰이 내려와 그를 깨웠다. 그는 졸다가 일어나는 척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두 손을 들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때마침 외국인 가방 주인이 돌아왔다. 지퍼가 열려있는 가방을 보며 황당해하는 외국인. 경찰은 상황을 알아차리고 강도를 연행해갔다. 


상황이 종료되었다. 내가 직접 해결한 건 아니었지만 이 분위기를 감지하고 내려오는 경찰과의 긴밀한 눈빛 사인으로 수사에 도움이 된 것 같아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긴장감을 느꼈다. 다행히 뭔가 2% 부족한 느낌의 강도였지만 흉기라도 든 강도였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내 아내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여행 시작부터 섬뜩한 일을 겪게 되었다. 


“오빠 저 사람 술 취해서 역에 들어와서 자려고 한 건가 봐.”

“응? 그러게 말이야. 위층에서 어떻게 경비를 뚫고 들어온 거지?”


순진한 아내는 술 취한 사람을 경찰이 데리고 나가는 줄로만 알고 있다.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까지 그가 강도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말이다. 하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우리 열차는 언제쯤? 
남자의 가방을 뒤지던 부랑자의 최후


이전 12화 러시아 vs 대한민국 그림 배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