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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어느 부부의 의미있는 딴짓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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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썬맨 Oct 24. 2021

사상 최악의 호스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숙소의 끝을 보다.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응 도착하면 연락할게.”

일마는 걱정이 되는지 헤어지는 순간까지 계속 당부했다. 우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까지 남은 이틀간 호스텔로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집안일로 자리를 잠시 비워야 하는 일마 집에 더 머무르는 건 예의가 아닌 상황이었다. 게스트하우스나 도미토리룸에 한 번도 숙박해본 적이 없던 우리는 로컬버스를 타고 숙소 찾아 삼만리를 나섰다.

“오빠 확실히 이쪽으로 가는 거 맞나?”

“응 내가 구글맵으로 위치를 몇 번이나 파악했다니깐 걱정 마셔.”

“그래 믿고 따라간다잉 우리 가이드님.”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일마 집에 갔으니 지도와 주소를 보며 찾아 나서는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인 셈이다. 우선 버스를 타야 한다.

“어? 버스에 다이나믹부산이라고 써져있는데?”

아내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소리쳤다. 정말이었다. 어설프게 붙어있는 A4용지에 쓴 러시아어 노선표 아래에는 당당히 다이나믹부산이라는 이전 노선표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 노후화된 버스를 외국으로 수출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러시아로 많이 수출하는 가보다. 괜시리 고향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가움이 느껴졌다. 정말 웃겼다.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은 러시아인데 한국에서 많이 타던 버스 구조가 보였고, 뒷문에는 손대지 마시오 라는 한글이 깜찍하게 적혀있는 상황이라니. 갑자기 이 버스의 존재 자체가 귀엽게 느껴졌다. 버스에 타자마자 아내와 배를 잡고 킥킥댔다.

러시아 버스는 신기한 게 벨을 눌릴 필요가 없다. 사람이 있든 없든 모든 정류장에 버스가 서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타서 뒤로 내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뒤로 타서 앞으로 내린다. 그 이유는 탈 때 돈을 내지 않고 내릴 때 내기 때문인데, 거스름돈을 거슬러 줘야 하기 때문에 기사가 있는 앞으로 내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코스에서는 줄을 서서 요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는 진풍경이 펼쳐져 시간이 한참 걸리기도 한다. 우리가 카드 한 장 대면 끝날 일을 이곳은 사람이 하느라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 분명 같은 버스지만 다르게 활용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편한 세상에서 살고 있었는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시내 중심지역에 있는 블라디보스톡 역에서 6코스를 더 가서 내려야 하는데 버스를 유심히 체크하고 있어야 한다. 안내방송이 없기 때문에 여차하면 내리는 곳을 헷갈릴 수가 있다. 사실 여기서 또 한 번 느끼는 거지만 대한민국처럼 고객 중심으로 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우리가 지내던 호주 브리즈번에서도 버스정류장 방송이 없기 때문에 알아서 내려야 한다.

드디어 하차. 앞뒤로 빵빵한 이삿짐을 메고 아내와 내렸다. 과연 이곳에 호스텔이 있을까? 싶을 만큼 황량했다.

“분명 구글맵상으로는 여기서 30번 건물로 가라고 했는데 말이야…”

러시아 유심칩을 구입했는데 이게 원활하게 작동을 하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가 되면서 GPS 정보를 수신해야 되는데 버벅거리며 이전 정보만 계속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된이상 어쩔 수 없다. 우리는 현지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여러 번의 거절 끝에 영어를 할 수 있는 한 여자분을 만났다. 그리고 한 철문으로 들어가는 호스텔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보 인제 다 왔다. 쫌만 올라가자잉. 이 건물이 맞다고 하네.”

“확실히 다 온 거 맞나?”

“응 아까 안내해준 분이 여기가 맞다고 했다.”

맞았다. 우리가 찾고 있는 주소와 정확히 일치했다. 긴장이 풀리면서 어서 들어가서 짐을 내리고 땀범벅이 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악의 호스텔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호스텔 입구는 굳게 닫혀있었다. 심지어 위층에서 내려온 주민이 여기가 호스텔이 아니라는 이상한 말을 하고 내려갔다. 여기가 호스텔이 아니라니? 급한 마음에 일마에게 전화를 했다.

“오 썬맨 숙소는 잘 찾아갔어?”

“우리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숙소에 온 것 같은데 문이 닫혀있어. 게다가 여기가 호스텔이 아니라고 하네. 대체 무슨 일이지?”

“그래? 혹시 호스텔 전화번호 있으면 나에게 보내줘. 내가 전화해볼게.”

“응 고마워 일마.”

“당연히 내가 알아봐 줘야지. 조금만 기다려.”

일마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십 분쯤 지났을까 일마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내가 전화해보니깐 얼마 전에 호스텔이 이사를 했데. 그래서 지금 있는 곳은 옛날 주소야. 새로운 곳은 거기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 이래. 내가 주소를 보내줄게.”

“응 알아봐 줘서 고마워 일마.”

새로운 주소를 받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한 시간 뒤 우리는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샤워를 했다. 힘든 이동이었지만 그래도 숙소를 찾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제 고생은 다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 뒤로 일어난 일들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분명 호스텔 예약 사이트에서 예약을 했지만 손님은 달랑 우리 둘 뿐이었다. 지역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하숙 개념으로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전부 남자였다. 당연히 숙소 청결상태도 엉망이었다. 도미토리룸에 놓인 2층 침대는 조금만 힘을 주면 아래층으로 떨어질 것처럼 불안하게 생겼고 벗어놓은 옷가지들과 각종 짐가방으로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엉망이었다. 막심이라는 이름의 관리자가 있어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게다가 한밤에는 싸움이 일어났다. 저녁부터 술을 먹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술에 취해 아내에게 계속 말을 걸어 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한방에서 싸움이 일어나 치고받고 소리 지르고 난리가 났다. 맞은 친구는 경찰을 부르겠다고 전화기를 눌렀고 그 소식에 놀래서 달려온 막심은 경찰을 부르면 큰일 난다며 한사코 뜯어말렸다. 아무래도 여기가 불법으로 운영되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쾌감과 불안함이 최고조에 달했다. 더군다나 앞으로 무수히 호스텔에서 숙박을 해야 하는데 이건 너무 강한 첫 경험이었다. 아내와 나는 호랑이굴에 던져진 양 같은 기분으로 밤새 불면증에 시달렸다.

우리 여행 이대로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