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우렁각시가 두 사람 있다. 한 사람은 함께 어머니 병시중을 도와주신 이모님이다. 시골서 사과 농사를 지으시면서 농약치고 사과 따고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도시로 나오셨다. 글을 모르고, 혼자 집에 있기 무서워서, 어른이 있는 주택을 찾으셨다.
딱 우리 집이었다. 아파트도 아닌 주택에다 어르신 세분이나 계셨으니 말이다. 텃밭도 이모님의 조언으로 하게 되었다. 그분은 농사일에 훤한 분이라 아버님 돌아가시고 가끔 밭에 오셔서 도와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봉사모임이었던 비채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다. 서울사람으로 시집을 대구로 오다 보니 친구도 많이 없고 내성적이고 참 조용한 사람이었다. 우연히 얘기하다 갑장인 것을 알고 더 친하게 지냈다. 그 친구 어머니께서 90이 다 되어가시는 데도 아직 농사를 지으신다.
그것을 보고 커서인지, 일을 겁을 안 내고 밭에 갈 때는 자기랑 같이 가자고 했다. 나도 너무 반가웠고 혼자 하는 것보다 재미도 있었다. 밭 한쪽에 뭐라도 심어 보라 해도, 그러면 부담이 가서 싫다며 기어이 하지 않았다. 내가 갈 때 그냥 편하게 따라만 오겠다해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텃밭서 일하고 그날 수확한 야채를 나눠먹으며 자주 같이 다닌다.
그 친구도 꽃을 좋아해서 자기 집 옥상에 이쁜 정원을 꾸며 놓았다. 거기에 여러 가지 꽃도 심으면서 내게 나눠주기도 했다. 어느 날 데리러 갔는데 그 친구가 뭘 스티로폼에 담아 오는 거였다. 그 친구는 운전을 안 했고, 또 밭에 가는 길에 친구집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는 길에 태워가고 오는 길에 내려주었다.
가지고 온 꽃은 낮 달맞이꽃이었다. 작년에 자기 집에 한두 포기 심었는데 많이 번졌다면서 우리 밭에도 좀 심으라면서 들고 온 것이었다. 나도 너무 좋아서 여기저기 흩어서 심어두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니 거의 군락을 이룰 정도로 번졌다. 정말 얼마나 예쁜지. 하늘하늘 보드랍고 연약한 그 꽃들이 주는 행복감을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특히나 낮달맞이는 함께 많이 피어있어야 더 예쁘다. 코스모스나 개나리처럼 모여 있어야 더 빛을 발한다. 그리고 다른 꽃들보다 굉장히 오래 피어있어서 좋다.
지나가시는 분들이 일부러 서서 구경하시고, 또 좀 얻을 수 있겠냐고 물으면 바로 몇 포기 퍼 드리기도 한다. 누군가가 준 선물이었는데 나도 나누어야지. 너무 번져서 야채밭으로 가는 애들은 뽑아서 산소 가서도 심어놓고 집에도 가져와 심었다.
그런데 산소는 물 주기가 힘들고 아무래도 온도도 좀 낮은지, 다음 해에 더 줄어들더니 지금은 아예 안 올라와서 안타깝다. 아버님께서도 꽃은 좋아하셔서 산소에 코스모스도 뿌리고 영산홍도 심었다. 코스모스도 많이 심었는데 수는 줄어드는 것 같다. 낮게 피는 제비꽃만 더 번져서 피어난다. 봄이 되면 바닥을 보랏빛으로 물들인다.
이렇게 5월부터 시작해서 여름까지 지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낮달맞이꽃의 꽃말은 무언의 사랑이다. 정말 잘 어울린다. 많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으면 정말 황홀지경이다. 향기까지 아주 좋다. 연한 핑크빛사이로 진한 핑크의 줄무늬가 잘 어울리는 낮달맞이꽃이 복숭아꽃이 지고 난 뒤의 아쉬움을 잘 달래준다.
운동을 좋아하는 미국인은 사계절이 야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라 했는데 내게 사계절은 복숭아꽃, 낮달맞이, 붓꽃, 수국이다. 물론 장미도 아름답고 작약도 우아하지만 그들을 따라가진 못한다. 그렇게 꽃을 기다리고 즐기다 보면 봄날의 텃밭일은 재미가 난다. 그러나 곧 무서운 여름이 온다. 좋아하는 꽃들도 다 지고 모기와 풀이 가득한 여름은 도망가고 싶다. 봄엔 꽃에 취하고 나누어 먹을 봄나물도 많은데, 아 어쩌지? 혹시 여름의 텃밭을 잘 이겨낼 지혜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