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지렁이를 보셨는가요?
예전에 아버님께서 텃밭을 가꾸실 때 퇴비를 직접 만들어 쓰셨기 때문에 땅이 좋아져서 지렁이도 정말 많았다. 퇴비는 흙에다가 집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랑 계분이랑 연탄도 같이 섞어서 만드셨다. 간간히 물도 뿌려주시고 비닐로 덮어두셨다. 봄에 밭을 한번 일구어야 할 때, 만들어 놓은 퇴비를 떠서 기존에 있던 흙들과 섞는다. 그 일이 좀 힘이 들지만 그래야 기존의 흙이 영양을 받는 때 이기도 하다.
그때 삽으로 흙을 뜨면 어김없이 지렁이들이 난리가 난다. 처음엔 그것이 무섭고 징그럽고 너무 싫었다. 시간이 흘러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걔들이 있는 흙은 정말 부드럽다. 보고 또 보고하니 친숙해지나 보다. 사람 또한 그러하겠지. 그렇게 지렁이와 친해지면서 채소들도 익숙하게 만지고 잘 크고 있는지, 벌레는 안 오는지 봐 주게도 되었다.
그렇게 아버님께서 농사를 지으실 땐 지렁이가 엄청 많았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턴 내가 얼떨결에 밭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밭으로 퇴비되는 재료를 옮기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지렁이가 덜 보이게 되었다. 채소를 갈기 위해 땅을 파다 보면 나오기는 하는데, 아버님께서 하실 때처럼 그렇게 때로 몰려서 춤추는(?) 모습은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농약이나 제초제는 아예 쓰지 않지만, 그 자연 퇴비가 없으니 지렁이도 사라지는구나 해서 안타깝다.
제일 미안한 것은 그들은 땅속에 있으니, 내가 모르고 땅을 깊이 팔 때이다. 어떤 땐 몸이 잘린 건 아닌가 할 때가 가끔 있다. 아무래도 비닐을 덮거나 채소를 심기 위해 땅을 일굴 때 깊이 파다 보면 놀란 지렁이를 가끔 만난다. 지렁이 입장에선 목숨이 달린 일이니 정말 미안하다. 그땐 다시 흙을 덮어서 한참을 둔다. 어디로든 도망가도록. 그렇게 나는 농군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텃밭을 가꾸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지터를 만들고 싶은 것이 첫 번째다. 가끔은 혼자 어디 가서 좀 있고 싶은데, 그럴 곳이 마땅치 않다. 카페엔 사람들도 많고 시끄럽기도 하고. 그런데 밭에 가면 자연 속에 혼자 있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아버님께선 평생 의자하나 만들어 두시고 거기서 가끔 씩 쉬시다 오시곤 하셨다.
햇살을 등에 받으며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채소들이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예사 ‘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버님이 직접 만드신 의자로는 아쉬워서, 파라솔과 의자 몇 개를 사서 갖다 두었다. 그런데 첨에는 갈 때마다 펴고 의자에 앉아 차도 즐기고 했는데, 나중에는 그냥 의자 하나면 충분했다. 바람과 비 때문에 파라솔을 걷어둬야 하니, 가서는 켜고 올 때는 거두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지금은 그냥 묶여있다. 역시나 아버님께서 현명하셨다.
두 번째 이유는 농약 안 친 채소들을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은 것이다. 실제 농사 지으시는 분들 말씀을 들으면 정말 약을 안치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 밭에서 나오는 것은 판매할 수가 없다. 이쁘지도 않고 벌레도 먹은 것이 많다. 그러니 판매하시는 분들은 약을 얼마나 칠까? 그래서 몇 가지라도 약 안 친 거 맘 편하게 먹으려고 땀과 시간과 내피(?)를 제공한다. 여름엔 엄청 물리면서 수혈하고 온다고 한다. 여하튼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게 조금씩 지렁이를 편하게 볼 수 있듯 밭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었다. 어디 가도 집 빼고 우리 밭만큼 편한 곳이 잘 없더라. 아주 작아도 괜찮다. 채소들이 자라는데 그리 큰 땅이 필요치 않다. 그리고 의자 하나면 충분하고, 내가 조금 땀을 흘리겠다는 맘이 생기면, 지렁이가 사는 작은 텃밭,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