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반 잡초 반인 텃밭
작년 여름 2023년엔 비가 정말 많이 왔다. 텃밭은 약간 진땅이라 특별히 물을 안 주어도 작물들이 잘 자랐다. 처음 모종을 옮겨 심을 때도 걱정이 안 된다. 특히 비가 온 뒤 비닐을 덮고 모종을 심으면 축축한 기운이 오래간다. 그래서 대구는 늘 강수량이 부족하다 해도 그럭저럭 견디어 온 것이다. 그런데 작년 봄부터 비가 자주 내렸다. 그러면 땅이 질어서 밭에 못 가는 날도 많았다. 급기야 지난해 여름이 되자 장마며 태풍이며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일단 비가 오면 밭에 못 가는 것이 젤로 단점이다. 왜냐하면 진땅을 밟으면 울퉁 불퉁한 채로 땅이 굳어지기 때문에 비가 오면 밭에 안 들어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풀이 무성히 자란다. 농작물이 자라는 속도보다 비 온 뒤의 풀은 정말 우후죽순처럼 잘 자란다. 비 오기 전에 어느 정도 정리 한 것 같은데 비 온 뒤에 가면 내가 다녀간 흔적을 완전히 지워 놓는다. 풀들이 얘기한단다. “모자 쓴 멍청이는 이제 갔는가?” 하면서 다시 살아난단다.
그리고 습해져서 모기랑 벌레가 많다. 특히나 나는 약을 안 치기 때문에 세상의 모기들이 다 달려드는 것 같다. 사람 잘 오지 않는 밭에 가면 그들은 얼마나 반갑겠는가? 몸엔 옷을 길게 입어서 들어올 틈이 없지만 실수로 짧은 양말을 신은 날은 귀신처럼 발목을 물어놓는다. 또한 바지가 얇으면 엉덩이 또한 남아나지 않는다. 그러나 얼굴은 어쩔 수 없이 내어 놓아야 하니 어찌 벌집에 쏘인 듯하지 않겠나. 엥엥소리가 귓전을 계속 울린다. 벌레 퇴치제를 만들어 가서 뿌리면 잠시 조용하다가 어느 사이 달려들곤 한다.
하지만 속상한 건 그게 아니다. 얼굴이야 버물리를 바르면 집에 가는 동안 가려움도 삭고 부기도 빠진다. 잠시 물릴 때의 가려움만 견딜 수 있으면 참을 만하다. 누가 독하다고 하더구먼.. 정말 속상한 것은 염치없는 풀들이 많다는 것. 나무든 새순이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 덮어버리는 거다. 키우는 채소 옆에 올라오지 않으면 그냥 두는 편인데-풀도 생명이라.. 어쩌지 못한다. 하지만 그냥 쭉 자라는 것은 덜한데 가시까지 달고 덩굴로 올라오는 풀은 정말 밉다. 같은 식물인데 어찌 저렇게 사람들에게 또는 다른 식물들에게 저렇게 해를 끼치는지 …그런 거 보면 우리 삶이랑 같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따로 있고 도움 주는 사람 따로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제도 기어이 낫을 들고 잘라냈다. 그땐 낫 질 하면서 스스로 모질게도 자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움의 감정이 내 손에서 묻어난다. 그때 살생하지 말라는 부처님 말씀이 생각난다. 순간이지만 이렇게 내 손에 살기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겠지. 집에서 어쩌다 바퀴벌레가 보이면, 그때도 잡으면서 살기를 느낀다. 그래서 부처님께선 아예 죽일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씀 아닌가. 여하튼 모질게 그 풀들을 베어낸다. 그러면 숨어있던 작물들이 나타나고 햇볕이 들어가고 바람이 통해서 흔들거리는 것을 보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미안 한 생각이 많이 든다. 말 못 하고 있었겠지만 얼마나 답답했을꼬. 다들 어울려 잘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모두 잡초와의 전쟁을 치른다. 가족 건강을 위해 텃밭을 가꾸는 것이 대부분이라 제초제를 쓰지 않고 비닐로 덮거나, 식초를 대신해 뿌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저 땅속에 무슨 씨앗이든 넣는 일이다. 무슨 채소나 꽃이 올라오면 잡초도 덜 나오기 마련이니 뭐라도 심어주는 것이 전쟁을 덜 치르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꽃을 피우는 잡초를 보면 쉬 뽑아버리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채소반 잡초 반이되어 숲이 된다. 하지만 그것도 어쩌랴. 꼭 뽑아내야 하는 아이들만 제거하면서 함께 지낸다.
이렇게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늘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루틴대로 하고 미루지 않으면 괜찮을 텐데.. 어김없이 자연은 시련을 주고 우리는 또 헤쳐나가면서 얻을 것을 얻고 배울 것을 배운다. 농사짓는 일은 그래서 좋은 거 같다. 몸을 쓰면서 건강도 찾고 힐링도 되지만 늘 상황에 직면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다. 내가 게을러서 미룬 일들을 결국은 내가 또 마무리를 해야 한다. 올핸 숲이 되지 않도록 부지런을 떨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