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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희건이나비 May 25. 2024

고라니가 내 상추를

고라니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겨울에 어쩌다 밭에 가보면 고라니가 우거진 풀더미에 집을 지어놓은 것을 볼 수가 있다. 한 블록만 내려가면 큰길인데 어떻게 그들이 살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본다. 다행히 마을 뒤로 들어가면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얕은 동산이 있다. 아마도 거기에 사는 모양이다.


  처음엔 아버님께 고라니가 내려와서 채소를 먹는다고 말씀 들었을 땐, 무섭기도 하고 일하다 만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못 오게 하세요.”라고 했다. 아버님께서는 밭에 울타리를 다 치는 것은 큰 일이니 한번 두고 보자 하셨다. 그렇게 고라니는 가끔씩 내려와서 채소를 먹고 갔다. 내가 밭일을 시작하고 두 해쯤 되는 어느 날이었다. 요즘 빈도가 심했다. 내려와서 상추도 먹고 고춧잎도 다 따먹고 해서 성질이 좀 나 있었다. 군데군데 눈 똥을 보면서 ‘요 녀석 봐라, 구석도 아니고 밭 가운데 버젓이 똥을 누네. 내 눈에 한번 띄기만 해 봐라 ‘ 하면서 그날도 밭에 들어갔다. 

 마침 그 녀석이 날 늦게 보곤 저도 놀라서 달라 빼는데 처음엔 길을 못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말은 그리했지만 놀래가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얼굴을 잠시 봤는데  마치 아기사슴 같았다. 난 이름만 듣고 두더지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무지 예뻤다. 그날 이후 나는 밭에 들어갈 때 일단 카메라를 켰다. 여차하면 찍어봐야지 하면서. 며칠이 안되어 정말 다시 만났다. 그래서 소리 지르기보다 얼른 폰으로 찍는데, 얼씨구 이 녀석이 나를 돌아본다! 자기도 나를 두 번째 만나니 안 무서운가 보다. 잠시 포즈를 취해주고는 달아난다.


  그러고 나니 이 녀석이 안 밉다. 무슨 조화지? 내 상추를 먹어도 ‘그래, 나눠먹자’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일부러 먹이를 주지도 못하는데, 많이 있는 채소 적당히 먹고 가라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나도 놀랐다. 그러면서 밭에 가면 “다 먹진 마라 내 것도 좀 남겨두고 먹어”라고 말하면서 일을 한다. 물론 그 시간엔 없지만 식물들과는 서로 교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가끔 내려오니 주변엔 그렇게 다들 울타리를 쳤다. 하지만 나는 결국 울타리를 치지 않았고 자연이 준 선물인데 ‘함께 나누지 뭐’ 한다. 


  집마당에도 고양이들이 놀러 온다. 길냥이다 보니 가까이 가면 다 도망가지만 나는 밥을 주기 시작했다. 한 자리에 지속적으로 주다 보니, 내가 깜빡 한 날은 냥이가 현관문 앞에까지 온다. 아차 싶어 나가 보면 밥그릇이 비어있다. 얼른 채워주면 멀찍이서 보고 있다가 다가와서 먹는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일단은 먹어야 산다. 이 모든 일이 먹고살기 위함이니, 배고픈 길냥이에게도 밭의 고라니에게도 함께 나눠 줄 것이 있어 다행이다. 나무를 키우고 열매가 달리면 우리만 먹겠는가. 새들도 와서 먹고 곤충도 먹겠지. 우리가 모르는 생물체가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텃밭을 가꾸는 일은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 이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아버님께 오늘도 감사드린다. 아버님 평안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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