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96 고려증권 배구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선수 구성에 비해 얄미울 정도로 잘하는 팀이 있다. 이런 팀들의 특징이 개개인의 능력치 합보다 하나의 팀이 되었을 때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에겐 IMF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려증권 배구팀이 그랬다. 사실 배구는 다른 구기종목에 비해 스타 의존성이 높은 스포츠다. 당장 김연경이나 현 프로 배구 용병만 봐도 뛰어난 개인이 팀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고려증권은 프로 이전 대통령배-슈퍼리그에서 6회 우승을 차지한 실업 배구의 최강자였다. 해체 이후 삼성화재의 독주가 이어졌지만 그래도 배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팀이 고려증권이다. 고려증권의 경기를 보다 보면 배구가 얼마나 우아하고 악착같은 팀 스포츠인가를 체감하게 된다.
고려증권은 창단 때부터 현대자동차써비스와 라이벌 관계였는데 삼성화재 창단 전까지 여러 차례 우승을 주고받았다. 농구로 치면 현대와 삼성이 우승을 번갈아하다 기아자동차라는 최강 포식자에게 먹혀버린 것과 흡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려증권은 팀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는 것. 고려증권의 전성기는 크게 1기와 2기로 나누어진다. 장윤창, 류중탁, 정의탁, 이경석이 활약했던 80년대 1기와 이성희, 이수동, 박삼용, 문병택, 박선출이 뛰었던 90년대 2기였다. 사실 1기 때는 장윤창이라는 슈퍼스타 때문인지 라이벌 현대에 비해 언더독이라는 느낌은 그닥 들지 않았다. 돌고래라는 별명을 가진 그의 왼손 스파이크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버렸고 초딩 시절 나는 장윤창이 세상에서 제일 배구를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당시 초등학교 체육 시간은 배구공으로 모든 종목을 다 커버했다. 발야구 피구 축구를 전부 배구공으로 했는데 막상 배구를 한 기억은 없었다. 운동장에 배구코트도 없었고 무엇보다 초등학생에게 배구는 접근 난이도가 높은 운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애들 몇 명과 함께 테니스 코트에서 배구선수 흉내를 냈다.
- 자 나의 돌고래 스파이크를 받아라!
장윤창의 폼을 흉내 내며 쓰지도 않는 왼손으로 배구공을 냅다 갈겼지만 공은 코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 이번에는 시간차 공격이다!
고려증권 센터 정의탁의 주특기 시간차 공격을 따라 할 즈음 건너편 애들의 비웃음 소리가 커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나는 고려증권의 팬이었다.
하지만 고려증권에 대한 애정이 본격적으로 커진 건 1기가 아닌 2기 때였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려증권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장윤창을 비롯한 1기 선수들은 노쇠했고 현대의 싹쓸이로 선수 수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선수 이름값으로 따지면 라이벌 현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한 수 아래로 봤던 금성과 대한항공에도 밀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우승은 잘하는 선수들을 수집한다고 해서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하종하를 비롯한 한양대 우승 주역을 모두 데려오고도 현대는 상무와 고려증권에게 연속으로 정상을 내주었다. 고려증권은 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되찾아왔는데 그해 장윤창은 마지막 불꽃을 태웠고 서울시청 이적 3인방 문병택 박삼용 이성희가 고려증권 2기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한편 현대는 한양대 선수들로는 모자랐는지 이번엔 임도헌을 비롯한 성대 출신들을 싹쓸이하며 우승의 전의를 불태웠다. 이로써 현대는 주전 대부분이 국가대표로 구성된 명실상부 최강팀이 되었다.
고려증권은 이듬해 다시 한번 현대와 결승에서 만났지만 중과부적이었다.
-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어떻게 이기라는 말이야?
고려증권의 팬으로서 조직력이 아무리 좋아도 초호화 멤버 현대를 꺾으라는 건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다음해 고려증권은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고 우승은 당연히 현대의 몫이었다. 나는 이제 고려증권의 시대가 끝났다고 믿었다. 스카웃 싸움에서 현대를 이길 리 만무하고 공룡구단 삼성까지 창단을 앞두고 있어 더는 미래가 없었다. 늘 그렇듯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어느 팀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는 팀이 있겠냐 만은 고려증권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움만 진하게 번졌다. 과거 1기 선배들의 모습이 그리웠지만 왜 그렇게 하지 못하냐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팀 스포츠도 결국엔 선수가 하는 것. 잘하는 선수가 많은 팀이 이기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닌가.
하지만 고려증권은 이를 인정할 수 없는 듯 마지막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배구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고 휴학을 준비하던 95년 말 슈퍼리그 개막. 개막전에서 고려증권은 예상을 뒤집고 현대를 잡았다. 이때만 해도 운 좋게 한번 이긴 거라 봤는데 이후 고려증권의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특히 이수동 선수를 주목하게 됐는데 생긴 건 동네 양아치 같지만 작은 키에 화끈한 고 타점의 스파이크를 마구 찍어댔다. 다시 결승에서 만난 고려증권과 현대. 전력상으로 보자면 누가 봐도 현대의 우세지만 기분상 이상하게 고려증권이 질 것 같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슈퍼리그 명승부로 회자되는 결승 4차전은 고려증권이라는 팀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준 멋진 승부였다. 현대 선수들도 몸을 던져가며 최선을 다했지만 하나로 똘똘 뭉친 그날의 고려증권은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다. 하얗게 불태운 6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을 끝으로 고려증권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후 팀은 IMF의 파고 속에 영원히 잠겨버렸다.
“어떤 종목이든 단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팀워크다. 팀플레이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나온다. 힘과 높이가 좋은 팀도 조직력이 뛰어나고 빠른 팀에게는 이길 수 없다. 배구는 개인이 아닌 팀 경쟁이다.” (전 고려증권 진준택 감독)
내가 구기 스포츠를 즐겨보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점에 있다. 물론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날수록 팀이 잘할 확률은 높다. 하지만 고려증권은 단체 경기의 참맛을 보여준 낭만과 투지의 팀이었다. 그것이 늘 성공하진 못해도 때론 돈의 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증명해낸 한 시대 배구의 진정한 승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