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규의 반찬통
고교 시절 점심시간 교실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점심시간 1시간 전부터 아이들은 도시락 뚜껑을 열고 쉬는 시간 10분을 활용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수십 개의 포크와 젓가락이 여러 반찬통을 휘젓고 다녔다. 마치 학교는 도시락을 먹기 위해 다니는 곳처럼 성장기 남학생들의 끝없는 식욕은 아귀처럼 먹어대도 수시로 배가 고팠다. 점심시간 직전 4교시 수업은 창문을 열어놔도 교실에 배어있는 반찬 냄새를 쫓아낼 수 없었다.
급식제도가 없던 시절이라 학생들은 매일 도시락을 두 개씩 손에 들고 다녔다. 도시락에는 필연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했다. 매일 다양한 반찬을 싸 오는 부르조아가 있고 두세 가지 반찬을 돌려가며 먹는 애들도 있었다. 그나마 이들은 양호한 축에 속하는 편이고 도시락을 아예 못 가져오거나 반찬 없이 밥만 들고 오는 케이스도 존재했다. 이들은 반 아이들의 도시락을 뺏어 먹거나 매점에서 불어터진 300원짜리 라면으로 때우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굶었다.
3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은 10분간 혼돈의 상태로 변한다. 다들 삼삼오오 도시락을 나눠 먹기 위해 책상과 걸상이 재배치되었다. 그렇게 헤쳐모인 아이들은 빨리 먹는 내기라도 하듯 밥과 반찬을 쑤셔 넣었다. 식사시간은 5분 이내로 끝내야 정돈을 다 마칠 수 있었다. 정해진 점심시간에 먹는 애들은 20%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일찌감치 다 먹어치웠다. 나 역시 점심은 3교시 이후, 저녁은 5시가 되기 전에 먹었고 제시간에 밥을 먹은 기억은 별로 없었다.
도시락을 먹다 보면 눈에 띄는 현상 하나가 목격되는데 반찬이 늘 모자란다는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첫 번째로 도시락통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다. 당시 도시락통은 밥칸에 비해 반찬칸이 절반도 안 되게 작았다. 이건 양은, 플라스틱, 보온 등 재질을 가리지 않고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밸런스 불균형으로 밥보다 반찬이 먼저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두 번째로 어머님들의 밥에 대한 태도였다. 이분들은 밥을 꾹꾹 눌러 담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라 여겼던 것 같다. 숨 쉴 공간이 부족한 밥들은 필연적으로 지속적 목마름과 많은 반찬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소개할 임성규라는 친구는 그런 면에서 교실의 슈바이처, 도시락의 유니세프 같은 존재였다. 고3 시절 성규는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 함께 모여 밥을 먹었다. 3교시 마침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면 성규도 여느 애들처럼 도시락통을 들고 이동했다. 특이점이 있다면 그의 도시락통이 남들보다 두 배 이상 크다는 점. 그는 커다란 반찬통을 하나 더 가지고 다녔다. 우리 도시락 멤버에 성규가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그의 반찬은 양이 푸짐할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차이가 났다. 소시지 부침, 볶음김치, 계란말이, 불고기 같은 탑 티어 반찬들을 종종 싸 가지고 왔다. 만성적 반찬 부족에 시달리는 애들에게 성규의 반찬은 기아에 허덕이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는 만나와 같았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의 대형 반찬통을 활짝 열어둔 채 아이들을 맞이했다. 반찬 없는 자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 할렐루야.
처음에는 성규의 반찬 나눔에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이 있었다.
- 야 애들 다 뺏아 먹잖아. 다 가져가 버리면 우리는 뭐 먹으라고.
- 아직 많이 있어.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
어느 날 도시락 멤버 중 한 명이 미리 성규의 반찬통에서 반찬을 쓸어다 자기 밥 위에 얹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자 아예 반찬통을 한쪽 모서리로 치워놓고 마치 너희는 여기에 손을 대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신호를 주었다. 그의 반찬통은 자연스레 우리 반 공용재가 되었다. 처음엔 조금 눈치를 보던 애들도 시간이 지나자 거리낌 없이 그의 반찬을 집어갔다. 그 때문에 정작 우리들은 의도치 않게 반찬 원정을 떠나는 경우가 발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기 반찬을 맘대로 주겠다는 걸 뭐라 하기도 그렇고 자칫 심기를 건드렸다 도시락 멤버에서 나갈까 봐 더 이상의 저항은 무모한 짓이었다.
분명한 건 본인이 반찬에 전혀 욕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편으론 그에게 어떠한 고마움도 표시하지 않고 당연한 듯 반찬을 가져가는 아이들이 좀 얄밉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거야말로 성규가 바라던 게 아닐까. 처음부터 수혜와 시혜의 불평등한 관계가 형성되면 상호간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고 처음부터 그 반찬통은 아이들에게 내어주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만일 법정 스님이 옆에 계셨다면 너야말로 진정한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구나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성규의 반찬통은 한창 에너지를 요구하는 고3 학생들의 귀중한 양식이 되었다. 그의 집이 여유롭고 부유하다는 건 하등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세상에는 베풀 능력이 있음에도 베풀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은가. 아이들을 위한 반찬통이 본인 의도인지 부모님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행위임은 틀림없다. 한 끼의 반찬통은 가벼워 보일지 몰라도 몇 개월의 시간이 축적되면 그것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탈바꿈 하겠는가. 성규와는 오래전 소식이 끊겼지만 아마도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때 반찬을 공유했던 아이들도 늦게나마 그를 기억하며 감사의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