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시장 찐만두
회사에서 가끔 시간이 남을 때 카카오맵 로드뷰를 보곤 한다. 학창시절을 보냈던 동네 부근을 탐색하다 보면 부산 명장시장이 아직도 그대로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구시가 쪽이라 그런지 개발 속도가 더디고 살았던 집들도 대부분 제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향에 갈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이렇게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 뭔가 반갑고 정겨운 마음이 찾아들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 재래시장에 대한 기억은 적잖은 부분을 차지한다. 마트나 온라인 주문이 없던 시대라 시장은 서민들의 필수코스이자 주부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였다. 콩나물 두부 달걀 같은 기본 식재료들은 인근 가게에도 팔았지만 어머님들은 조금이라도 더 싸고 다양한 좋은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 내 어머니 역시 일주일에 두세 번 장을 보러 시장에 갔다. 장 보는 날은 대게 평일 낮이라 형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다른 한 손에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시장으로 향했다.
내가 어머니를 따라간 이유는 시장에서 먹는 군것질 때문이었다. 특히 한 개 50원 하는 찐만두를 가장 좋아했다. 간혹 호떡과 오뎅을 먹는 날도 있지만 원픽은 무조건 만두였다. 어린아이 손으로 한 줌이 안 되는 작은 크기지만 찐만두 두 개가 주는 기쁨은 100원의 가치를 상회하는 것이었다. 항상 두 개씩만 먹었는데 그 이상은 안 된다는 암묵적인 선을 스스로 지켰다. 제 욕심대로 먹어치우다 300원 400원으로 올라가면 엄마가 할머니에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월급으로 여섯 식구 살림살이를 챙긴다는 게 만만찮다는 건 어린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늘 만두를 먹지 않고 100원짜리 동전을 꺼내 계산만 했고 자주 들리다 보니 가게 아줌마랑 가벼운 수다도 주고받을 정도로 안면을 텄다.
어머니는 만두를 처음부터 사주지 않고 꼭 장을 다 본 다음에 들렀다. 상인들의 물건을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흥정하고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시장 안을 몇 바퀴 돌기도 했다. 나에게는 이 시끄럽고 지저분한 시장바닥을 유랑하는 게 마냥 즐거울 리 없지만 만두를 먹기 위해선 참아야 했다. 기다림의 보상은 역시나 달콤했다. 큰 찜통의 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과 함께 희고 동그란 만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기는 별반 차이 없지만 맘에 드는 만두를 직접 손으로 가리키면 아줌마가 간장과 함께 접시에 담아서 내왔다.
- 천천히 묵거라. 입 다 데인다.
처음에는 급하게 먹느라 입천장을 데기도 했지만 먹다 보니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덜 뜨거운 피를 먼저 살짝 뜯어먹고 속에 바람을 불어 식힌 다음 조금씩 베어 먹는 것이다.
어머니는 종종 장을 다 봤음에도 집에 바로 가지 않았다. 시장 입구 나무 의자에 앉아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며 바람을 맞다가 옆에 앉은 내게 말을 걸었다.
- 학교 다니는 건 어떻노 재밌나?
- 잘 모르겠다.
- 선생님 말씀은 잘 듣고?
- 응.
- 반에 친한 친구는 있나?
- 정훈이가 약국 뒷집에 사는데 올 때 같이 온다. 짝지는 한주인데 걔랑은 말 별로 안한다.
- 스승의 날에 선생님이 엄마 오라고 안하더나?
- 안 와도 된다. 반장 부반장 엄마랑 다른 엄마들 많이 오니까 오지 마라.
- 니는 내가 학교 가는 게 싫나?
- 그런 건 아니고.
어릴 때부터 유별날 정도로 학교에 부모님이 오는 걸 싫어했다. 부모님이 부끄럽거나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학교라는 영역에 가족이 오는 것 자체가 뭔가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운동회 날에도 안 오면 안 되냐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좀 서운하게 느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어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만두를 포장해가는 경우는 몇 번 없기에 만두는 사실상 내가 독점하는 격이었다. 같이 가지 못한 형이 질투의 시선을 보냈지만 소용없었다. 누가 학교에서 늦게 오래. 만두를 먹는 특권 정도는 어린 동생에게 양보할 줄도 알아야지. 문득 어머니에게 시장이란 시부모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공간이자 어린 자식과 데이트할 수 있는 의미 깊은 장소였던 게 아닐까. 시장에서 어머니의 표정은 대체로 밝고 편안해 보였다. 그 시간을 즐기려고 일부러 천천히 시장을 돌아다녔을지도. 훗날 어머니가 암으로 드러누울 줄 알았더라면 그때 학교에 와도 된다고 말했을 텐데 지나보니 그 점이 후회되고 아쉽다.
군만두와 찐만두를 놓고 근본을 논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에게는 만두 = 찐만두이다. 비록 평소엔 군만두를 많이 먹지만 비주얼이나 맛으로 보자면 그래도 찐만두가 우위에 있다. 먹을 게 풍족해진 시대라 예전만큼 만두를 많이 먹진 않지만 이만큼 호불호가 덜한 먹거리도 드물다. 명장시장이 그 오랜 세월에도 살아남았듯 우리 모자의 짧고 행복했던 시장통의 시간 역시 나와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어주는 하나의 끈으로 남아 있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