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설렁탕
2000년 1월1일 0시.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새천년을 맞이하는 이벤트로 영화 박하사탕이 개봉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신인급 배우 설경구를 원탑 주연으로 내세운 점이 주목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의 전작인 초록물고기를 인상적으로 봤던 나 역시 기대가 컸다. 이벤트는 놓쳤지만 다음 주 영화를 보기 위해 종로를 찾았다. 친한 여자 후배에게 동행을 제안했고 날씨는 소한 추위를 막 지나 살이 떨리도록 추웠다. 개봉 일주일이 지났지만 피카디리 안은 거의 만원이었다. 둘 다 관람 시 뭘 먹는 타입이 아니라 팝콘과 음료수는 사지 않고 2시간 동안 영화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영화는 평론가와 관객의 눈이 다르지 않다는 걸 증명하듯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는 충분히 만족했고 하고 싶은 말이 머리에서 입으로 튀어나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 김영호 너무 불쌍해.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지? 시대의 책임일까?
- 문소리 진짜 캐스팅 잘한 거 같지 않냐? 미인은 아니지만 순수한 첫사랑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이창동은 어디서 저런 배우를 찾았을까?
영화의 여운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그녀와 달리 나는 눈치 없이 이번에도 여배우 얘기를 먼저 꺼냈다. 1월의 밤은 몰려나온 인파의 체온으로도 감당이 안 될 만큼 차갑고 매서웠다.
- 저녁 뭐 먹을래? 파스타? 스테이크? 샤브샤브?
- 그러지 말고 추우니까 따뜻한 국물 있는 거 먹자. 아 저기 설렁탕 집 있네.
설렁탕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여자와 단둘이 국밥을 먹는 건 썩 달갑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연애나 썸을 타는 사이는 아닌지라 굳이 의식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여자는 여자 아닌가. 깍두기를 베어먹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거보다 부드럽게 칼질과 젓가락질하는 모습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라고 은연중 생각했을 것이다.
설렁탕 두 그릇을 시키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화 얘기를 주고받았다. 극 중 설경구의 명대사로 알려진 ‘나 다시 돌아갈래~’ 가 화제로 올라오던 그때
- 오빠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어?
- 글쎄....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힘들고 대학생 때는 외톨이였고 초등학교 때는 몸이 자주 아파서 싫고 그렇다고 어른이 되니 딱히 좋은 것도 없고 그냥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 넌 언제인데?
- 난 무조건 지금보다 어릴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요즘 먹고 사는 게 힘드네.
고작 스물넷 여자에게서 나올만한 정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나 힘든 시기는 보편적 기준과 다를 수 있지 않은가. 나에겐 남들이 부러워할 대학 시절이 인생의 암흑기였던 것처럼.
하얀 김을 뿜어내며 뚝배기에 담긴 설렁탕이 배추김치, 깍두기와 함께 테이블에 놓였다. 뜨끈한 국물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경직된 몸이 풀리고 머리가 차츰 맑아졌다. 영화 수다를 끝내고 우리는 소주 한 병을 시킨 뒤 각자의 신세 한탄을 나누었다. 그녀도 나도 힘들다는 말을 몇 분 간격으로 반복했다. 몇 년째 하던 일에 실패하고 취업이 되지 않아 놀고 있는 나와 시골에서 상경 후 생활고와 집안 문제로 시달리고 있는 그녀는 서로에게 딱 맞는 하소연 파트너였다.
- 넌 어릴 때 곰국 많이 안 먹었어? 옛말에 마누라가 남편이 미울 때 곰국 한 솥 끓여놓고 도망간다잖아. 엄마가 도망간 건 아니지만 우리 집도 곰국은 지겹도록 많이 먹었거든.
- 그럼 오빠는 설렁탕 싫어해?
- 아니야 이건 곰국이라 다르지. 설렁탕은 맛있어. 니 말 듣길 잘했네.
인사치레가 아니라 그때 먹은 설렁탕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뚝배기 바닥이 보일 무렵 그녀는 가방에서 대충 싼 포장지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 이거 목도리인데 새해 선물.
- 나 목도리 안하고 다니는데.... 암튼 고마워. 근데 난 선물 없어서 어쩌냐.
- 하기 싫어도 좀 하고 다녀라. 추위 많이 타면서. 오빠는 장갑도 잘 안 끼지?
- 그냥 몸에 거추장스러운 게 있으면 불편해. 장갑 마스크 목도리 이런 거 전부 다.
우리는 소주 한 병을 딱 기분 좋게 걸친 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해 여름 나는 드디어 첫 직장에 입사했고 그녀는 타지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줄 남자친구가 생겼다. 이후 우리의 삶은 삐거덕대는 와중에도 여차저차 매듭을 풀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며 나아갔다. 몇 년 전 지인들 모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결혼 후 아이 셋을 낳은 그녀는 엄마라는 포지션을 가장 큰 자랑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 우리 예전에 종로에서 박하사탕 봤던 거 기억나?
- 박하사탕? 아....그때가 언제지?
- 날씨 엄청 추웠는데 끝나고 종로에서 설렁탕 먹었잖아. 니가 들어가자고 해서.
- 내가? 정말?
예상대로 그녀는 그날 일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과거의 추억을 제쳐놓을 정도로 지금의 삶이 분주하고 만족스러웠울 거라 믿고 싶다. 목도리 선물 이야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는데 모르겠다고 말하면 조금 서운할 것 같아서였다. 습관은 안 변한다고 그녀가 준 목도리를 하고 나간 적은 드물었다. 생각해보니 여친에게도 받지 못한 목도리를 선물한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목도리는 아니어도 설렁탕은 이후 더 친근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날의 기억은 박하사탕, 설렁탕, 목도리로 정리되어 머릿속에 수납되었다. 문득 영화 속 ‘나 다시 돌아갈래~’ 가 다시 생각난다. 여전히 특별히 돌아가고픈 시절이 없는 걸 보면 현재가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건지 어차피 실현 불가능한 일이니 일종의 정신승리인지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