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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나는 회사에서 버티기

곱창/대창/막창

by 카미유

우리 집 근방엔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3개의 곱창집이 있다. 한 곳은 생긴 지 1년이 안 됐고 나머지 두 가게는 꽤 오랜 시간 간판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고 자영업 폐업율이 상승곡선을 타는 와중에도 여러 곱창집이 상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이 좁은 골목에 3개의 곱창집은 과해 보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망하지 않았다는 건 꾸준히 손님이 들어온다는 건데, 사람들은 왜 곱창을 좋아하는 걸까. 문득 3개의 곱창집 중 어디가 먼저 문을 닫을지 궁금해진다. 아이러니하지만 이곳에 10년 넘게 거주했음에도 3개의 곱창집 모두 가보지 않았다.

곱창에 대한 호불호를 묻는다면 불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싫어하거나 못 먹는 쪽은 아니지만 내가 제안해서 간 적은 한 번도 없었고 타의에 의해 먹은 기억밖에 없었다. 발단은 소와 돼지의 내장을 저렇게 악착스레 먹을 필요가 있을까 라는 점에서 출발하였다. 시각적인 면은 제쳐두고라도 아무리 세척을 한들 똥이 지나가는 기관을 잘라먹는 자체가 떨떠름했다. 물론 어차피 포식자 입장에서 먹잇감의 신체 경중을 따진다는 게 우습긴 하다. 그럴 거면 순대는 왜 먹고 하물며 뇌도 파먹는 판국에 그깟 창자가 뭐 대수냐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가성비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않다는 뻔하디뻔한 자본주의적 변명 정도랄까. 곱창, 대창, 막창.... 다들 이름 하나만큼은 찰지다.

지금 몸담은 회사의 입사 전까지 곱창을 먹은 횟수는 대략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입사 20년 차를 맞이한 지금은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주로 회식 때문이었다. 묘하게도 이 회사엔 유난히 곱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입 시절에는 회식 참석을 직장인의 의무라 여겨 거르지 않았고 적응을 어느 정도 마친 뒤로는 비정기적 술자리가 차츰 생겨났다. 이곳은 공단지역이라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아 마음 맞는 사람끼리 퇴근 후 술 한잔 나누면서 회포를 푸는 게 하나의 코스였다. 자연스레 곱창집은 이들의 모임 장소로 변모하였다.

불판에 곱창이 구워지고 소주잔이 오가면서 사람들의 말은 추진력을 받아 뻗어갔다. 테이블의 뿌연 연기와 장단에 맞춰 목소리는 하나둘 커지고 삶의 찌끄러기가 분출되는 통로가 절로 만들어졌다. 우리 테이블에도 너나 할 거 없이 회사 생활의 불만이 차례차례 배출되었다.

- 말이 이렇게 앞뒤가 달라서 어떡하냐고!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A부서)

- 사람이 나갔는데 인원을 왜 충원 안 해줘! 다른 회사 같으면 3명은 더 뽑았을걸. (B부서)

- 만만해서 조지는 건가? 물건 못 팔면 다 우리 부서 책임이래. 회장이나 대표나 싸패가 틀림없어. (C부서)

이런 분위기에서 그들 편을 들지 않기란 쉽지 않다. 앞뒤가 다른 말을 하면서 긴장 타게 만드는 건 오너의 속성이며 인원 충원을 안 하는 건 어떻게든 돌아가니까 그런 것이고 조졌을 때 매출이 잘 나오는 건 안타까운 팩트라는 걸 어떻게 내 입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다들 이해와 동조를 갈구하고 있었다. 우리는 꿈도 희망도 없는 가련한 프롤레타리아 피해자들이고 사장은 돈에 미친 자본주의의 주적 부르주아인 셈이다. 뭐 나라고 할 말이 없진 않았지만 마이너 부서 입장에서 자칫 엄살로 비춰질까 봐 입을 닫았다.

하지만 분노는 종국엔 돌고 돌아 자학적 금전 문제로 흘러가고 먹고사니즘의 순환 회로는 반복되었다. 이들은 땅속 말뚝처럼 태풍이 쓸어가거나 누군가에게 강제로 뽑히지 않는 한 스스로 회사를 떠나지 못하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일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굽신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익숙한 광경이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상길처럼 하악~씨! 를 내뱉는 거 말고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 너는 왜 안 먹니. 곱창 싫어해?

- 아닙니다. 지금 먹고 있어요.

나는 B부서 과장님이 손수 가위로 잘라준 곱창을 조용히 받아먹었다.

지난 20년 동안 곱창집에서 직장생활의 희로애락을 참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덩치 큰 아저씨들이 그 자그만 창자를 오물오물 씹어대는 모양새가 귀엽다고 해야 하나 짠하다고 해야 하나. 누가 더 힘든가를 전시하는 K-직장인의 비애를 당사자가 아니면 어찌 공감하겠는가. 나에게 곱창이라 하면 직장인의 애환이 연상되고 이들을 위해 준비된 소박한 만찬이 아닐까라는 느낌마저 든다. 이 곱창 나는 회사에서 곱창을 씹어먹으며 고된 하루를 리셋한 뒤 다시 시작할 기운을 회복하는 그런 거 말이다. 뭔가를 털어내고 싶다면 누군가와 함께 곱창집으로 가자. 혹시 모르지 않나.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곱창의 힘은 강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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