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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모래판의 별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뚜기 손상주 장사

by 카미유

“청룡 만세 백두 만세 천하장사 만만세~”

이 가락을 절로 흥얼거릴 수 있다면 당신의 나이는 최소 마흔이 넘었을 거라 추측된다. 80년대 민속씨름의 인기는 직접 겪어본 세대가 아니면 믿기 어렵다. 요즘은 씨름 중계도 잘 없고 비인기 스포츠로 전락한 지 오래되어 시골 어르신들이나 보는 스포츠로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80년대 씨름은 명실상부 메이저 스포츠였다. 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천하장사 대회 시청률은 50%에 육박했고 프로야구 프로복싱의 인기에 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녀노소 세대를 가리지 않아 가족 단위 시청 스포츠로는 씨름만한 게 없었다.

우리 가족 역시 씨름 중계가 있는 날은 대동단결 티비 앞에 모였다. 평소 스포츠 중계를 보지 않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뉴스와 드라마를 포기할 정도로 열광했다. 사각 트렁크에 청색 홍색 샅바를 멘 거구의 장사들이 등장할 때마다 누가 이길지 점을 쳤고 특별히 응원하는 선수가 나오면 박수까지 쳤다. 씨름의 흥행은 초대 천하장사이자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가 주도했다. 95kg 이하 한라급 선수임에도 화려한 기술과 강골로 20킬로 이상 체중이 더 나가는 백두급 선수들을 줄줄이 눕혀버렸다. 실력도 탑이지만 호남형의 잘 생긴 외모까지 더해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 할머니는 이만기가 몰래 낳은 제 자식이라도 되는 양 우리 만기~ 우리 만기~ 를 입에 달고 다니던 열성 팬이었다. 이만기를 필두로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인간 기중기 이봉걸까지 소위 ‘3이’가 80년대 천하장사 타이틀을 나눠 가졌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이들이 아닌 오뚜기라는 별명을 가진 천하장사 무관의 손상주 장사였다.

손상주는 85kg 이하의 금강급으로 씨름판에 발을 들였다. 요즘 85kg은 건장한 일반 성인 남성의 체중이며 당시 기준으로도 씨름 선수치고는 상당히 왜소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배에 새겨진 선명한 王자와 보디빌더처럼 아름답고 탄탄한 근육질 몸을 유지하고 있었다. 얼굴 역시 전형적인 미남 상은 아니지만 남자다운 강인함과 매서운 눈매가 잘 조화된 인상이었다. 초대 금강장사에 오른 손상주는 금강급 타이틀을 독식하기 시작했다. 한라와 백두급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 체급이지만 그의 장기인 잡치기와 현란한 손기술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금강장사를 7번이나 차지한 손상주는 더 이상 적수가 없어 한라급으로 체급을 올렸고 이는 곧 황제 이만기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다.


손상주 VS 이만기. 생각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매치였다. 그동안 손상주는 천하장사 대회에서 이만기를 넘지 못했지만 같은 한라급이라면 충분히 해 볼만한 승부였다. 할머니는 손상주가 날렵하고 눈초리가 무섭다며 표범이라 불렀다.

- 약삭빠른 표범 저거 밉어 죽겠네. 만기한테 덤빌라고.

- 할머니, 이만기는 많이 해먹었잖아요. 이참에 손상주도 천하장사 함 되어봐야죠.

- 표범이 만기를 이긴다고? 아이고 택도 없다.

- 길고 짧은 건 붙어봐야 알죠. 누가 이기는지 나랑 내기할랍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얼마 후 이만기가 백두급으로 전향하면서 한라급에서 둘이 맞붙은 건 한 번뿐이었고 승자는 또 이만기였다.

또다시 체급이 달라진 둘은 천하장사 대회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손상주는 이만기가 빠진 한라급을 서서히 평정해 나갔다. 금강급처럼 압도적이진 않았지만 통산 9번의 한라장사에 오르며 최강자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손상주는 호랑이 없는 굴의 왕으로 만족할 순 없었다. 그는 아직 천하장사 타이틀이 없었다. 천하장사에 등극하기 위해선 이만기를 위시한 ‘3이’의 높은 벽을 넘어서야 했다. 대부분의 투기 운동이 그렇듯 씨름 역시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어드밴티지가 엄청나다. 실제로 이만기를 제외하면 백두급이 아닌 선수가 천하장사를 차지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4강 진출 사례조차 드물었다.

손상주는 한라급으로 백두급 거구들과 맞서며 천하장사를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제5회 천하장사 결정전. 손상주는 앞선 4번의 대회에서 3번이나 우승한 이만기를 마침내 쓰러뜨렸지만 결승에서 만난 이준희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이어지는 6회, 7회 대회 결승에서 손상주는 연거푸 이만기를 만났다. 하지만 황제는 두 번의 패배를 용납하지 허락하지 않았다. 이만기는 이준희에게 잠깐 내주었던 천하장사 타이틀을 되찾았고 이후 손상주는 한 번도 천하장사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금강장사 7회, 한라장사 9회, 천하장사 0회. 선수로서 충분히 빛나는 커리어지만 끝내 무관에 그친 천하장사 타이틀은 자꾸만 눈에 밟힌다. 티비를 보며 응원하는 나조차도 이런 데 당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만기와 강호동의 은퇴 후 본격적인 거인들의 시대가 찾아왔다.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이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다양한 기술 대신 힘과 덩치로 밀어붙이면서 인기는 점차 하락했고 IMF로 인한 팀 해체와 선수 부족은 씨름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는 씨름부가 있었다. 같은 반 씨름부 친구가 대회에 나가면 티비에 나오기도 했고 모래판은 친숙한 공간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 한편에 만들어진 대형 모래판에서 나는 친구들과 자주 씨름을 했다. 체격이 작고 힘이 약해 항상 먼저 넘어지는 쪽이었지만 모래가 옷에 묻고 입으로 들어가도 마냥 즐거웠다. 체육을 싫어하는 아이였지만 씨름만은 예외였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씨름의 매력을 제대로 설명하긴 쉽지 않다. 맨몸을 맞대고 상대를 넘어트리기 위해 울부짖던 원초적 야생성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모래판을 화려하게 수놓던 내 추억 속의 씨름 영웅 한명 한명의 얼굴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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